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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04 19:29 수정 : 2013.12.04 19:30

그 문서에는 노조에 대한 혐오와 멸시, 악감정이 가득 차 있다. “노조 설립 시 즉시 징계할 수 있도록 비위사실 채증 지속.”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소위 삼성노조 파괴 문서에 담긴 내용이다. 우리는 모두 가족이라는 삼성에 노조를 꿈꾸는 사람들은 조기 와해 또는 고사화 대상이다. 150쪽에 빼곡히 들어찬 노골적인 혐오감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노동조합이라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는 늘 위험한 시도였다. 무노조라는 명목으로 노동자 탄압 역사에 길이 남을 미행, 납치, 감금, 협박, 채증, 휴대폰 위치 추적, 노동자에 대한 개인정보 수집, 노조 설립 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대응전략이 세워졌다. 그것도 모자라 그들의 무노조경영은 삼성을 넘어 온 사회에 확산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삼성식 노무관리는 노동조합에 대한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기업에 대한 윤리적 경영,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이 이야기되고 있는 세계적 조류에 비추어 한국사회는 삼성으로 인해 거꾸로 가는 역사의 시계를 돌리고 있다.

노동조합이라는 기본적인 권리와 삶의 조건을 박탈한다는 것은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의 사각지대를 의미한다. 삼성에서는 노조를 만들거나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는 노동자를 엠제이(MJ)사원(문제사원)이라고 부른다. 엠제이사원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노조 결성 이후 표적감사의 대상이 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최종범은 배고프고 허기가 진다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선택했다. 삼성반도체에서 산업재해로 죽어간 수많은 노동자들은 무노조의 비인격적 언어 뒤에 숨은 인간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들의 죽음으로 문제가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돈과 복지와 직장의 끈으로 묶였을 때 어떤 극단적인 상황들이 벌어지는지 알게 되었다. “삼성에 노조가 있었으면 우리 유미가 죽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이야기하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황유미씨 아버지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노동은 우리 삶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고 삶을 유지하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 삶의 중요한 요소를 파괴한다는 것, 그것을 경영이념이라 한다는 것은 삼성이 얼마나 반인권적이고 비인간적인가를 증명한다.

삼성에 없어야 할 것은 노조가 아니라 노동자를 고통 속에 살게 하는 무노조경영이고, 반노동의 정서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노동자 통제 전략이다. 문서에는 “철저한 준비와 훈련이 필요. 최초 현장 여사원이 노조 관련 문서를 발견·신고한 것이 사전 대응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대목이 있다. 에버랜드 노동자들이 노조 준비 과정에서 복사 용지 한 장을 흘렸는데, 동료가 신고해서 회사가 대응할 수 있었다는 모범사례로 쓰여 있다. 동료를 신고하고 권리가 권리로 대접받지 못하는 회사가 정말 괜찮은 회사일까. 2013년 신경영 선언 20년이 되는 해에,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출범한다.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일에 맞춰 삼성의 노동인권선언을 외치며 공공의 눈으로 삼성을 감시할 계획이다. 학자·법조인·문화예술인·시민사회인권운동가·시민들이 발벗고 나섰다. 더 많은 노동자가 권리를 이야기하고, 더 많은 사람이 그 권리를 응원해야 삼성은 바뀔 수 있다. 삼성이 변해야, 이 사회가 변한다.

안은정 삼성노동인권지킴이


<한겨레>에서 시민사회 토론 공간으로 제공한 지면입니다. 한국 사회 구성원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의 기본을 갖추고 인신공격을 멀리하며 합리적인 논거를 담은 제의, 주장, 비판, 반론 글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글과 함께 이름과 직함, 연락번호, 주소를 적어 보내주십시오. 청탁 글이 아니라 자발적 참여로 짜이므로 원고료는 드리지 않습니다. 전자우편 opinion@hani.co.kr, debate@hani.co.kr, 팩스 (02)71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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