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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2500일 외침 / 손은정 |
성서 누가복음 18장에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가 나온다. 어떤 마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는 재판관이 있었는데 한 과부가 재판관을 찾아가서 “내 적대자에게서 내 권리를 찾아 주십시오”(새번역)라고 호소했다. 그 재판관은 한동안 그의 간청을 무시했으나 이 과부가 얼마나 끈질기게 찾아와 호소를 했던지 그만 지치고 말았다. 그래서 재판관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지만, 이 과부가 나를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
왜 과부의 권리는 처음부터 인정받지 못했을까. 재판관이 불의하기 때문에? 아니면 과부가 힘없는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지금도 사회적 약자의 정당한 권리는 쉬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니 2000년 전 성서의 이야기가 가깝게 다가온다. 이 성서 이야기가 그래도 희망적인 이유는 끈질긴 과부(사회적 약자)가 불의를 이겼다는 사실 때문이다.
적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일터에서 쫓겨났다. 너무나 억울하여 공장에서, 거리에서 다시 일터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외쳐왔다. 그 세월이 무려 2500여일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지 모르지만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성공한 기업, 콜트와 콜텍이라는 기타 회사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재판관을 찾아간 과부처럼, 해고된 노동자들도 법원에 호소했다. 그렇게 2007년에 시작된 소송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하지만 성서의 과부처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정당한 권리는 찾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이 이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일까? 지난 8월16일 재판부(고등법원)가 지정한 회계법인이 경영감정평가를 진행한 보고서가 나왔다. 그 내용은 “(정리해고를 할 만한) 경영상의 긴박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곧 파기환송된 고등법원 판결이 있을 예정이다. 모든 국민들의 권리를 지키고 정의를 수호해야 할 법원은 콜트·콜텍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는 부당하며 따라서 노동자들을 원직복직 시켜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주길 바란다.
억울하게 정리해고 되었던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지난 7년간 안 해 본 것이 없다. 천막농성, 고공농성, 삭발, 단식, 1인 시위, 선전전, 집회 등 여느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과 비슷하나 조금 특이한 것은 따뜻한 문화라는 옷이 덧입혀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문화예술인들 특히 기타리스트들이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함께하며 지지공연을 해 왔다. 지난 15일, 시나위 신대철씨를 비롯해 사랑과평화 최이철·김목경·한상원씨 등이 예스24무브홀에서 ‘기타 레전드, 기타 노동자를 만나다’란 제목의 콘서트를 했다.
또한 기타를 만들기만 했던 노동자들이 3년 전부터는 기타를 배워서 직접 연주하고 있다. 아예 ‘콜밴’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길거리에서,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다른 노동자들의 집회 현장에서 공연을 하기도 한다. 지난 10월에는 연극배우가 되어 대학로 소극장 ‘혜화동 1번지’에서 꽤 완성도 높은 연극을 올렸다. <구일만 햄릿>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딱 9일 동안만 공연을 했는데 반응이 좋아 12월17일부터 앙코르 공연을 한다.(인터파크 예매 가능) 어떻게든 자신들의 억울함을 알리고 지지를 받고자 하는 노력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다시 성서로 돌아가 보자. 하물며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권리를 찾아주었는데, 법과 원칙이 중요시되는 사회라면 당연히 약자들의 빼앗긴 권리를 찾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7년을 한결같이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애써 온 노동자들의 꿈이 실현되는 성탄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손은정 목사·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노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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