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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18 19:21 수정 : 2013.12.18 19:21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나도 내가 이런 선정적인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표현은 이미 우리 사회 도처에 과잉상태이며, 설령 그것이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켜야 할 선량하고 부드러운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이율배반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리적 의사개진과 반영이 사라진 ‘명박산성’에 이은 ‘불통박통’ 사회는 국민들의 극단적인 행동을 부추기고 있다. 불이 나고 있는 상황에서 “불이야!” 하는 외침이 주민들의 밤잠을 깨운다고 해서 그저 숨죽여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실제로 얼마 전 경기도 포천시에서는 말기 암으로 고통받는 아버지를 간병하는 것에 지친 아들이 목 졸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충남 당진시에서도 25년간 뇌병변 아들의 간병에 지친 아버지가 집에 불을 질러 함께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그러니 사실 자극적인 것은 ‘표현’이 아니라 우리 ‘현실’인 셈이다.

의료민영화가 가져올 재난적 상황에 대한 수많은 경고와 실증적 사례들이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과 근거들에 눈감고 귀 막은 박근혜 정부는 이른바 ‘전면적인 의료민영화’안을 내놓았다. 13일 정부가 발표한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 중 보건의료부문을 보면, 의료기관 ‘자회사’를 통한 본격적인 영리활동 허용, 의료법인간 인수합병 허용, 외국인환자 병상비율 규제 완화 및 외국인 밀집지역 의료광고 허용, 법인약국의 허용, ‘유-헬스’로 포장한 환자정보 활용 허용 제도화 등, 그간 이야기되던 의료민영화 정책 대부분이 들어 있다. 누구의 표현대로 ‘의료민영화 쓰나미’인 셈이다. 이러한 조처는 ‘영리법인병원’의 허용과 민간보험회사, 제약회사 등 대자본의 병원·의원·약국 설립 허용 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철도에 이은 의료민영화의 후폭풍을 걱정해서 정부는 이번 조처가 민영화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의료민영화’ 또는 ‘의료사유화’란 결국 의료부문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줄이거나 포기하고, 반대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대형 민간자본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이라 할 때, 작금의 조처는 이런 ‘의료민영화’의 정의에 정확히 부합한다.

예상되는 결과는 참혹하다. 몇몇 민간보험회사와 통신대자본이 돈을 벌지 모르겠지만, 이른바 대형 기업병원을 제외한 중소병원들과 특히 개원가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고, 빈번한 병원 폐쇄와 구조조정으로 병원 노동자들은 거리로 내몰릴 것이다. 그래도 가장 고통받을 이는 대다수 서민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바로 이 의료민영화의 모델인 미국의 의료비는 구매력을 보정하고도 우리나라보다 5배 이상 더 비싸고, 미국 내 파산의 60%가 의료비로 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정부는 부자증세도 반대하니, 결국 우리 사회 마지막 사회안전망인 국민건강보험은 허울뿐인 제도로 몰락할 것이다.

옥스퍼드대학 데이비드 스터클러 박사는 최근 그의 책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에서 소련 붕괴 직후 충격요법(급격한 민영화)을 주장했던 사람들과 이를 채택한 국제기구/정부 때문에 1000만명이 더 죽어야 했다고 고발하고 있다. 더욱이 신자유주의의 이론가인 밀턴 프리드먼조차 “그때마다 나는 ‘첫째도 민영화, 둘째도 민영화, 셋째도 민영화’라고 대답했다. 내가 틀렸고, (급진적 방식을 반대했던)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옳았다”는 반성의 글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정의·인권을 위해 살았던 만델라의 죽음을 전 인류가 애도하는 이 시간에도 코레일은 민영화 반대와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직원들을 추운 거리로 내몰고, 무려 7608명이나 직위해제 했다.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의료민영화는 아파도 돈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국민 모두를 직위해제 하는 일’이다. 정작 직위해제를 당해야 하는 이는 국민의 보건복지 향상이 아니라 ‘대자본 복지부’가 되어버린 보건복지부이며, 병든 자식과 함께 자살을 선택해야만 하는 서민의 아픔을 모르는 ‘불통박통’ 정부이다. 하여 이쯤에서 다시 한번 명토박아 두자. “의료민영화는 살인이다. 이 광란의 질주를 멈춰라.”

신영전 한양대 교수·사회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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