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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30 18:45 수정 : 2013.12.30 18:45

1813년 12월3일 해거름, 제주읍 중면 거마촌(제주시 아라2동 걸머리)에서는 풍헌 양제해(1770~1813)가 소집한 마을회의에 30여명이 모였다. 촌장의 공지사항이 끝나자 상찬계(800여 서리 중 300여명이 결성한 계모임)를 고발하자는 의견이 씨가 되어 금세 성토장으로 급변해 하나같이 외쳤다. 돈을 신으로 받드는 이 계의 비리는 목장밭, 미역세, 군역, 소 도살, 노름, 불효자, 불복자, 음란녀, 추문녀, 술주정꾼에게서 뇌물을 착취하는 게 그 본질이었다. 그 피해는 “백성들의 살갗, 살, 피, 뼈가 다 없어지는 사진(四盡)”의 생활고로 축적되었다.

마침내 양제해는 등소(떼지어 몰려가 목사에게 호소)의 장두로 추대되고 누군가 등장(등소할 때 호소문)을 쓰는 조건으로 수락연설을 했다. “간리의 소굴 상찬계를 타파해야 살 수 있소. 내 한 몸 던져 백성을 구하리다.” 목사 김기수의 도움을 기대하면서 연설을 마치고 해산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그 누가 마을 백성의 등소 결정이 대역무도죄의 국사범으로 둔갑할 줄 알았을까.

계원 윤광종이 상찬계 두목 김재검에게 등소 모임을 알리자, 분노의 칼끝이 자기 조직을 겨냥하는 것을 직감한 김재검은 아연실색해 등소를 사전에 제압하는 초고속의 긴급조치를 꾀했다. 간부회의를 소집하고, 목사에게 고변장을 제출했으며, 체포명령과 수백의 포졸을 소집해 양제해를 붙잡아 관아에 꿇어앉혔다. 3일 밤 11시와 4일 새벽 1시 사이의 일이었다.

목사의 국문으로 “삼릉장과 치도곤으로 절구질하듯 매질”을 당한 양제해는 이날 새벽 장살되었다. “저는 글을 모릅니다. 모변(반란모의)이 뭐지요? 저는 그저 등장하려는 연유와 상찬계의 비리를 마을을 돌면서 얘기하려 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고문 중 반복한 양제해의 항변이었다.

목사가 다급해졌다. 대역무도죄인을 심문할 때 자백을 받지 못한 채 죽이면 그 대역죄가 성립 안 되는 국율 때문에 목사의 파직은 당연한 순서였다. 이에 따라 목사는 김재검과 야합해 양제해의 사망일을 3일에서 19일로 바꿔 조정에 급보로 알리면서, 1811년 12월 ‘홍경래 난’ 때 이 난에 적극 참가의사를 밝힌 ‘거괴’라고 왜곡한 보고도 끼워 넣었다.

목사가 바라던 대로 조정은 모변을 인정했다. 바로 2년 전 전국을 진동시킨 ‘홍경래 난’의 악몽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자연발생적인 등소 미수사건은 임금의 보장으로 졸지에 사건의 실체조사 없이 대역무도의 국가반란으로 고착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제주도는 ‘반역의 섬’으로 낙인찍혔다.

19일까지 양제해를 죽여놓고 살아 있는 양 진행한 71명의 국문 결과는 장살 7명(양제해 포함), 사형 2명(양제해의 큰아들과 고급무관 고덕호), 무기 섬유배 4명, 섬유배 6명, 보석 10명, 특방 17명, 훈방 9명, 불문 10명, 무기록 5명 등 모두 71명이었다. 고문과 회유로 우려낸 이들의 자백 아닌 ‘자백’의 다양한 내용은 별국(탐라독립국) 창설을 위한 군사반란, 이 거창한 허구의 원색적인 조작으로 귀일되었다.

좀더 풀어보면, 모병한 중무장의 900여 반란군이 동시에 제주, 대정, 성읍을 공격하고 관장을 살해한 뒤 양제해를 도주(島主)로 추대하는 거병범관설(擧兵犯官說), 당시 널리 퍼진 민간설화에서 인기있는 고려 삼별초의 김통정 장수를 양제해가 사칭했다는 설, 양을라 후손으로 탐라개국신화를 차용하여 양제해가 별국 창설을 주도했다는 설 등이 그것이다. 풍비박산된데다 제주민에게서 철저하게 소외된 양제해의 가족과는 달리 양제해는 4, 5년 뒤 항우와 같은 영웅이자, 난세를 치유할 메시아로 제주 백성의 가슴에서 부활했다.

이상이 조선의 가장 황당한 날조극의 전말이다. 꼭 200년 전 이맘때 71명의 울혈에 찬 핏빛 절규는 사진에 찌든 제주 백성을 공포와 증오의 바다 속으로 침몰시켰다. 오늘날 국가폭력도 그 본질에서는 이와 같지 않을까. 다음은 71분께 바치는 나의 헌사다. ‘원통한 영혼들이시여. 이승의 고통, 미여지벵뒤 가시낭에 걸쳐두시고 편히 저승 상마을로 가시옵소서.’

김정기 전 제주교육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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