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1.08 19:15
수정 : 2014.01.0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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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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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의류공장 노동자들이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최소 4명이 숨졌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의류·봉제산업 노동자들이 시위를 하자 치안당국이 시위대를 상대로 해 쇠파이프와 칼, 전기곤봉 그리고 소총을 동원했다.
의류공장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한 시위만이 아니라 부정선거 논란을 일으킨 2013년 7월 선거 이후 정치적 상황에 항의해 수천명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지난해 7월 캄보디아 총선에서 약 125만명의 유권자 명단이 선거인 명부에서 사라지고 대규모 부정선거가 자행된 정황이 드러나자 야당이 국회에 등원을 거부하고 총선 재실시와 훈센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긴장이 높아졌다. 캄보디아 법원은 야당 지도부에 이번 시위의 책임을 물어 소환장을 발부했고 한국 기업들이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는 방침을 내세웠다.
그런데 캄보디아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대선 이후 한국에서는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두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철도노조는 민영화를 반대하며 시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냈고 한국 정부는 “불법파업”이라며 시위에 대해 무리한 대응을 했다. 사상 초유의 폭력적인 민주노총에 경찰력 투입이라는 강수가 동원됐으며 한국의 경찰도 철도노조 간부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가두려 하고, 코레일은 노조에 152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주말 동안 캄보디아의 소식을 들으면서 마음이 더 안 좋았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자신의 고문이라고 자신 있게 떠드는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가 혹시 2008년 한국의 ‘촛불시위’를 진압한 것을 보고 배우지는 않았는지 하는 우려 때문이다.
정치적 입지가 위협받을 때 지도자가 문제제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최후의 수단일 수 없는 무력과 공권력을 동원하는 모습, 노동기본권을 ‘불법’이라는 틀로 가두어 놓는 모습, ‘돈’을 무기로 내세워 연대한 시민들을 무력화시키려는 모습. 지난 몇 년간 한국의 시민들이 온몸으로 느껴야 했던 좌절감과 닮았다.
최근 보석으로 풀려났던 강제퇴거 반대 활동가 요름 보파 씨가 1월5일 다시 잡혀 들어갔다. 시위 소식을 알리기 위해 프랑스 대사관으로 향하는 길이었다고 한다. 정부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면 ‘종북’이라고 몰고 해외에서 국정원 관련 시위를 하던 한국인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던 정치인의 얼굴도 떠올랐다. 우리 스스로 캄보디아보다는 나은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너무도 닮았다.
너무도 닮은 두 사회에 지난 철도 파업을 두고 낸 국제앰네스티의 성명 한 부분을 다시 인용한다. 현재의 캄보디아에도 현재 한국 사회에도 필요한 권고다. 집회나 시위를 진압할 때 인명과 재산에 심각한 해를 입힐 폭력의 실질적인 위험이 있다면 불가피하게 경찰력을 투입할 수 있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경찰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국제인권기준이 있다. 유엔 법집행 공직자 행동강령에 따르면 오로지 “엄격한 필요”에 의해,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수준에 한해” 공권력을 사용해야 한다.
김희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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