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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27 19:27 수정 : 2014.01.27 19:27

과학기술은 이제 한 나라의 산업과 국방의 바탕이 되어 그 나라의 국력을 좌우하는 척도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높은 교육열과 근면함에 힘입어 상당수 산업분야들에서 세계적 수준에 올라섰다. 하지만 그러한 산업기술의 바탕이 되는 기초 과학기술의 경우 아직 세계적 수준에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이러한 앞선 산업분야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지금까지의 ‘빠른 추종자’에서 ‘앞서가는 자’로 변해가야 할 처지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해줄 기초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초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물론 기본적으로는 기초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 연구비 투자가 대폭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방향을 향한 정책의 일환으로 최근 기초과학연구원을 설립하고, 이 사업에 매년 수천억원의 예산을 투자하겠다고 한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의 일환으로 중이온가속기센터와 함께 입안되었다.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와 일본의 이화학연구소를 본떠 만들어졌다는 기초과학연구원은 지금까지 16개 연구단이 구성되었고, 2013년에만 2000억원 가까운 예산을 사용하였다. 앞으로 2017년까지 모두 50개의 연구단을 구성하여 이에 필요한 5000억원과 본원의 운영예산을 합하여 연 6500억원 규모의 연구기관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자금을 기초과학에 투입하는 것 자체는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발전을 위하여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예산 대비 투자의 효율성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제한된 과학기술 연구예산을 고려할 때, 책정된 연구예산은 매우 효율적으로 투자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여러 가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현재 약 7만명에 달하는 4년제 대학의 교수들 중 이공계 교수 수는 전체의 절반을 넘는 약 3만80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한편, 국가 기초연구비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한국연구재단의 ‘이공기초연구사업’ 예산은 2013년 현재 약 1조원 정도이다. 이 중에서 개별 연구자들에게 돌아가는 예산은 일반연구자 사업 약 4000억원, 중견연구자 사업 약 3000억원, 리더연구자 사업 약 1000억원 정도다. 이 중 3년 동안 매년 5000만~6000만원 정도 지원되는 일반연구자 사업에서 약 8000명, 연 1억원에서 3억원이 지원되는 중견연구자 사업에서 약 2000명, 연 10억원 안팎이 지원되는 리더연구자 사업에서 약 100명 정도가 혜택을 받아, 전체 이공계 교수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연구자들만이 국가의 기초연구비 혜택을 받고 있다.

이밖에도 집단연구지원 사업에 약 1500억원 정도의 예산이 배정되지만, 이에 참여하는 연구자들 대다수가 개별연구 지원도 받기 때문에 연구비 수혜자를 늘리는 데 크게 기여하지는 못하고 있다. 2013년도 기초 개별연구 신규 지원 결과를 보면, 일반연구자 사업의 경우 20% 미만의 선정률로 824명을, 중견연구자 사업의 경우는 10% 미만의 선정률로 485명을 지원하였다. 이는 2013년에 신규로 지원받은 우리나라 기초 연구자의 수가 채 1500명도 되지 않아, 3년의 연구지원 기간을 고려할 때 예년보다 신규 지원 규모가 크게 줄었음을 보여준다.

2013년은 기초과학연구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해이기도 하다. 기초과학연구원 산하의 연구단들은 매년 100억원 정도의 예산을 지원받는다. 연구단은 단장 산하에 5명의 세부과제 책임자들이 있어 이들이 각각 연 10억~15억원의 예산을 독자적으로 집행하고 나머지는 단장 책임하에 집행한다고 한다. 연구단장은 엄격한 선정 절차를 거치지만, 세부과제 책임자들의 경우 단장이 전적으로 선임한다고 한다. 세부과제 책임자는 산하에 교수급 연구자를 두지 않고 계약직 연구원이나 박사후 연구원들을 데리고 연구를 수행한다.

문제는 이제까지 큰 규모의 과제를 운영해 보지 않았던 대다수 세부과제 책임자들이 연 10억~15억원의 적지 않은 예산을 과연 얼마나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개별과제인 ‘국가과학자’의 예산도 연 15억원이다. 때문에 철저히 검증받았다고 볼 수 없는 세부과제 책임자들이 10~20명의 교수급 연구자들이 함께 사용하는 우수연구센터(SRC나 ERC)의 1년 예산보다도 적지 않은, ‘국가과학자’ 급에 해당하는 연구비를 자신들만의 재량하에 쓰게 되었다는 점은 여러모로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운영의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 적지 않은 국가 예산을 투입하는 기초과학연구원 사업에서 이처럼 예산집행의 비효율성과 방만한 운영의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여러모로 우려되는 부분이다. 문제는 이런 비효율성과 일정 정도의 방만함까지 감내하면서 이러한 사업이 다른 기초 분야 사업들보다 우선적으로 지원되어야 하는가이다.

정부가 일반인들에게 내세우는 기초과학연구원 육성의 가장 큰 이유는 노벨상 수상자급의 세계적 수준 과학자를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임된 연구단장들과 선임되지 않은 다수의 우리나라 우수 연구자들 사이의 간극은 종이 한 장 차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우리는 요즈음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소규모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국내 연구자들이 세계적 수준 또는 국가 산업에 아주 중요한 연구결과들을 얻었다는 보도들을 접하고 있다. 이는 많은 풀뿌리 개별 연구자들이 연구단장에 선임된 사람들 못지않게 우수한 잠재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살펴볼 다른 사업으로는 비케이(BK)21플러스 사업이 있다. 이는 대학원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으로 정부가 소수의 대학들을 지정하여 2013년에만 2500억원 정도의 예산을 사용하였다. 이렇게 지정된 대학들은 대부분 규모가 큰 대학들로서, 이 사업에 속한 교수들은 대체로 개별 연구비 지원도 받고 있다. 따라서 이는 이른바 잘나가는 대학의 연구자들에 대한 이중적인 지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선정되지 못한 다수의 대학들에는 선정된 소수의 대학들에 없는 세부 전문 분야들을 전공하는 교수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선정된 소수의 대학들로만 몰리게 되니 선정되지 못한 대다수 대학에 있는 교수들은 대학원생 확보도 어렵게 되어, 선정된 대학들에 없는 특정 세부 전문분야들의 경우 해당 분야 학문 후속 세대 양성과 그 분야의 발전마저 낙후될 수밖에 없다. 이는 큰 국가적 손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비케이21플러스 예산과 기초과학연구원의 효율적 운영을 통한 예산 절감분(30% 정도)을 풀뿌리 개별 연구자 지원으로 돌린다면, 2013년의 경우 약 3000억원 정도가 확보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추가로 3000명 이상의 개별 연구자에게 신규 연구 지원이 가능해져 2013년 신규 지원 연구자 수의 2배를 뛰어넘는 수의 연구자들에게 추가적으로 자신들의 연구를 수행할 기회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물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기초과학연구원의 설립 취지는 대단히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운영 방식에는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와 같은 ‘파격적인 지원’ 사업은 연구수행 능력이 충분하다고 인정된 우리의 교수급 연구자들 모두가 자신들의 연구를 활발하게 수행할 수 있는 국가적 연구 지원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에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창영 세종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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