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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29 17:38 수정 : 2014.01.29 17:38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기초 과학기술에서의 중요한 업적들은 중요한 연구 주제로 인정받아 집중적인 지원을 받는 대형 연구과제가 아닌 전혀 예상치 않은 분야나 연구자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는 기초 과학기술 분야의 학문적 성격에도 기인한다. 기초 학문의 발전은 대부분 기존 이론을 수정하거나 뒤집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기초 분야에서의 ‘선택과 집중’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며 결코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기초 분야의 경우에는 연구 역량을 갖춘 모든 연구자들에게 필수적인 최저 수준의 연구비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그로부터 더 훌륭한 성과를 보이는 연구자에게는 추가적인 지원을 해주는 그런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만 작위적인 선택으로 인하여 향후 중요해질 기초 분야들마저 도태시키는 잘못을 피할 수 있다.

기초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 대다수 연구가 주로 국가가 지원하는 공공 연구비에 의해서 수행된다. 그러므로 기초 과학기술의 성공적인 육성은 결국 공공 연구비를 지원하는 방식과 규모에 따라 판가름 나게 된다. 한편 대한민국은 아직 연구 분야 전반의 저변이 충분히 두텁지 못하다. 일본은 거의 모든 세부 전문분야에 다수의 연구자들이 있어서 여러 겹으로 칠한 표면과 같다고 한다면, 우리의 경우는 아직도 대부분의 세부 전문분야를 겨우 한두 번 칠할까 말까 한 표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예 칠이 전혀 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부분도 종종 있다. 그러므로 모든 세부 전문분야가 몇 겹 이상씩 아주 두텁게 칠해져 있는 미국이나 적어도 서너 겹 이상씩은 칠해져 있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우리 현실에 맞는 연구비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 연구당국은 미국 과학재단의 연구비 지원 선정 비율이 7 대 1이지만, 우리는 5 대 1 정도의 비율로 선정하여 우수 연구자들을 지원하니 오히려 상대적으로 더 많이 선정하였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세부 전문분야에 연구자가 겹겹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러한 경쟁은 결국 서로 다른 세부 전문분야들을 단순히 논문 수나 파급 효과와 같은 것으로 탈락시킬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경우 연구비 지원 선정에서 탈락된 세부 전문분야들의 쇠퇴는 육성하고자 하는 다른 분야의 발전에도 결국 장애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경우, 기초 전문연구인력의 저변 확대에 좀더 큰 역점을 두어 적어도 모든 세부 전문분야들에서 복수 이상의 연구자들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게끔 기초 분야 연구비를 대폭 확대하여야 한다.

미국과 달리 캐나다는 연구능력이 되는 대다수 연구자들에게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연구비를 지급한다고 한다. 연구 인력이 미국보다 훨씬 작은 자신들의 연구 환경을 반영한 것일 것이다. 캐나다의 경우 이처럼 소규모 풀뿌리 개별 연구는 전적으로 지원하지만, 더 큰 규모의 연구비를 받으려면 매우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반, 중견, 리더의 3단계로 개별 연구자들을 구분하여, 그 지원규모를 늘려가며 우수 연구자로 육성한다는 그럴듯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첫 단계인 일반연구의 경우에도 치열한 경쟁 때문에 나름대로 연구결과를 가지고 있는 연구자들이 지원한다. 연구업적이 시원치 않은 경우 지원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5명 중 1명 미만이 선정된다. 다음 단계인 중견연구에는 상당한 연구경력을 가진 연구자들이 지원한다. 하지만 10명 중 1명 미만이 선정된다. 이때 10명 중 상위 4~5명 정도는 논문 수나 논문 수준 등에서 거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다. 세부 전문분야들도 대체로 달라 함께 비교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때문에 결국은 심사에 들어간 패널의 친소 관계나 단순히 논문 편수 등으로 그 지원 여부가 결정된다. 이런 경우, 과연 선정된 연구자와 탈락한 연구자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할 것인가? 리더연구의 경우는 더 언급할 필요조차 없겠다.

이처럼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에, 연구능력이 검증된 많은 ‘중견’ 연구자들이 지속적으로 일반연구에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지원하는 일반연구마저도 치열한 경쟁구도를 갖고 있어서 상당수 중견급 연구자들도 지속적인 연구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례마저 생기고 있다.

기초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학문 후속세대를 육성하고 학문의 연속성을 이어가며 그 분야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대학원생 지도는 그 분야의 전문가를 육성하는 것이고, 박사후 연구원 과정은 이렇게 육성된 인재가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독립적인 연구자로 거듭나게 하는 훈련과정이다. 그러므로 연구능력이 검증된 교수급 연구자들에게는 소수의 대학원생과 함께 적어도 한 명 정도의 박사후 연구원을 지원할 수 있는 규모의 연구비가 지원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연구결과에 특별한 부족함이 없다면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대만의 경우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연구지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즉 연구능력이 검증된 대학교수급 연구자들 대부분에게 한 명의 박사후 연구원과 소수의 대학원생을 지도할 수 있는 정도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결과가 나오는 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지원한다고 한다. 더 큰 규모의 연구비는 캐나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심사와 매우 심한 경쟁을 통하여 지원한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 연구지원 시스템은 연구자의 등급을 일반, 중견, 리더로 3분화하여, 정해진 연구비를 연구비의 필요 유무나 분야에 상관없이 지원하고 있다. 연구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고가의 장비나 시료를 써야 하는 경우 연구비도 많이 배정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연구의 특성과 상관없이 학자의 등급에 따라 연구비를 정하여 지급하는 것은 참으로 비효율적인 연구예산 집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현재의 연구자 등급에 따라 3단계로 구분된 개별 연구자 지원제도를 대만이나 캐나다처럼 ‘기본’과 ‘다음 단계’로 이분화하여, 1단계에서는 연구능력이 검증된 대학교수급 연구자들 모두에게 적어도 소수의 대학원생과 박사후 연구원 한 명 정도를 지원할 수 있는 규모의 연구비를 지원해 주는 것이다. 그 규모는 실험학자의 경우 1억원 안팎, 이론학자의 경우 6천~7천만원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다음 단계의 더 많은 연구비 지원이 필요한 연구자들의 경우는 엄격한 심사와 공정한 경쟁을 거쳐 필요한 액수만큼만 지원해 주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도 미국 과학재단처럼 전임 전문평가위원들을 확보하여, 연구제안서의 적정성을 판단하고 연구에 필요한 적정 소요액을 산출하여 지원해주는 평가-지원 전문가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연구능력이 검증된 우리 연구자들 모두를 활발하게 연구에 임하게 할 국가 연구체계는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이를 위해서 연 1조원 정도의 추가적인 예산이 풀뿌리 개별 기초 연구에 더 지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국가의 지원은 나라의 모든 고급 두뇌를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우리의 기초 과학기술을 더 빨리 한 단계 향상시킬 것이다.

이창영 세종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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