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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29 17:39 수정 : 2014.01.29 17:39

대학이 한바탕 난리를 겪었다. 삼성그룹 새 채용제도의 일환인 총장추천제 탓이다. 대학별로 할당 인원이 언론에 공개되자 4년제 대학 총장 모임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크게 반발했다. 언론도 총장추천제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의제설정 했다. 대학 서열화 조장과 지역 차별 논란을 비롯해 삼성이 대학까지 통제하려 한다는 비판까지 일었다. 결국 삼성그룹은 총장추천제를 포함한 새 채용제도를 전면 유보하기에 이르렀다.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된 삼성그룹의 새 채용제도가 유보된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뒷맛이 개운치 않다.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대학생이 주체로 나서지 못한 이유에서다. 이른바 총장추천제 반대 성명을 낸 총학생회는 고려대가 유일했고 청년단체는 청년 유니온뿐이었다. 학생회 연합 단위인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이나 전국총학생회장모임(전총모)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청년단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삼성 쪽 대응이 빨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총장추천제’를 포함한 삼성의 새 채용제도 발표는 10일도 더 된 일이다. 여론을 형성하고 대응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총장추천제와 이해관계가 직결된 당사자는 대학생이다. 당연히 논의의 중심에 있었어야 했다. 당사자라는 표현은 대학생이 기업 채용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는 뜻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총장추천제가 학생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논의의 주체가 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대학별 할당 인원이 보도되며 이슈가 대학별 인원에만 매몰됐지만, 추천제의 또다른 문제는 ‘학생 길들이기’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총장과 학장의 추천권이 대학생들의 자치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대학본부나 교수 사회와 대립각을 세워 온 학생들, 예컨대 운동권 학생회나 재단을 감시하는 학보사 구성원이 총장과 학장의 추천을 받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이는 등록금 문제, 학사구조조정, 재단 비리 문제, 학보사 편집권 문제 등에서 학생 사회가 동력을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더욱이 대학 구성원들이 학생 사회를 이탈해 취업전선에 뛰어든 지 오래인 상황이다. 대학생활 전반이 추천권 평가의 대상이 된다면 지금과 같은 이탈현상의 가속화가 심화될지도 모른다. 물론, 서류심사만을 면제하는 총장추천제의 힘을 확대해석하는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삼성의 채용방식은 다른 기업 채용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추천제가 일상화된다면 단순히 기우로 치부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삼성의 총장추천제는 유보상태다. 취소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박수치기엔 이르다. 훗날 보완되는 삼성의 채용정책이 대학의 입맛에 맞춰 반발을 줄이면서도 학생 사회의 자치성을 훼손할 여지를 남길지도 모른다. 그때는 대교협이 나서지 않을 것이다. 오롯이 학생들 몫이다. 비단 총장추천제만이 문제가 아니다. 자본의 일방적 힘이 학생 사회를 압박해온 일은 부지기수다. 스펙 위주의 채용 관행, 천정부지 등록금, 월 30만원 이상의 민자기숙사, 비인기 학과 학사구조조정 등 자본논리가 캠퍼스를 덮쳤다. 과거 공권력이 캠퍼스를 밀고 들어왔다면, 오늘날에는 자본권력이 캠퍼스를 밀고 들어온 것이다.

학생 사회를 위해 대학생이 나서야 할 때다. 무조건적인 반대나 강경일변도의 투쟁을 권하는 주장이 아니다. 적어도 대학생과 학생 사회가 직결된 사안에서 스스로 주체로 거듭나자는 것이다. 비현실적인 주장 또한 아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일반 학생 대중이 사회적 의제에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가능성을 보이기도 했다. 대학생들이 나서 가깝게는 삼성이 기존 채용제도의 폐단을 극복하면서 학생 사회의 자치성을 확보하도록 공론의 장을 구축해야 한다. 멀게는 학내의 일방적 자본권력을 견제하고 극복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진보적 학생회 연대체와 활동적 비권 학생회, 그리고 청년단체가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토대로 힘을 합쳐야 함은 필수적이다.

금준경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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