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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05 19:28 수정 : 2014.02.05 19:28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판매가 되듯 대학도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박용성 중앙대 이사장) 중앙대는 이 교육철학을 학교에 이식시키기 위해 회계학을 공통필수 교양과목으로 지정했다. 다른 대학의 학생들도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부합하고자 자신의 전공과도 관계없는 경영학 과목을 수강한다. 이처럼 경영·경제 관련, 곧 기업경영에 필요한 과목이 대학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노동자를 양성하는 데만 급급할 뿐, 노동과 관련된 교양이나 그 현실을 가르치려 하지는 않는다. 그 사이, 정작 노동자에게 필요한 노동법은 무시되기에 이르렀다. 하물며 대학생의 대부분은 당장 노동자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방법조차 모른다.

그만큼 대학은 노동자의 권리보다 자본의 이해를 더 대변하는 상황으로 변질돼 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의 뒤에 숨겨진 존재가 바로 대기업과 대자본이며, 그 논리가 우리 사회를 광범위하게 지배하고 있는 탓이다. 그런데도 이런 대학의 현실에 저항하려는 학생은 좀처럼 보기 드물다. 학생들이 직접 나서서 노동법과 노동 현실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대다수 학생들은 갈수록 힘들어지는 취업 탓에, 기업의 하청업체를 자부하는 대학에 열광하고 지지를 보내며, 그 현실마저 스스럼없이 묵인한다. ‘취업의 전당’으로 전락한 대학, 거기서 배출될 예비노동자들은 노동과 그 가치는 도외시한 채, 기업가적 자아만을 알게 모르게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은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을 시작하였고,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 그 절차도 적법했다. 하지만 중앙대는 “용역업체와 노동자들 간의 일”이라며, 되레 파업을 벌이는 노동자들에게 온갖 방해 공작을 펼쳤다. 게다가 총학생회는 이 파업이 학교의 가치를, 아니 기업의 고용 구매도를 떨어뜨리는 행동이라 파악했는지, 청소노동자들을 지지하기는커녕 이들이 소속된 민주노총에 “노동쟁의를 중단하고” “학교에서 철수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청소노동자의 노동3권보다 학교와 학생의 ‘안녕’만을 더 생각한 대학본부와 학생회가 노동법과 노동조합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에 발생한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자의 언어, 노동법이 이렇게 대학에서 존재의 이유를 잃어가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는 노동자들이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헌법 제33조 제1항) 보장받을 때야 비로소 실현 가능하다. 그 이유는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고, 노동관계를 공정하게 조정하여 노동쟁의를 예방·해결”(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1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이 보여주듯, 노동3권과 여타의 노동기본권이 법조문의 내용과는 달리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정리해고·비정규직 등 반인권적인 행태를 저지르는 기업의 횡포에, 노동자들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그마저도 정부의 기업편향적인 모습에 노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노동자는 있지만 노동, 그 권리는 없다. 노동은 노동자의 생존권을 넘어 사회권까지 모두 포괄하는 행위인데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그 단어 자체까지 불온시하려 한다. 노동법마저 자본에 의해 법의 지위를 상실한 지 오래다. 노동법을 배우는 노동자도, 가르치는 대학도 적다. 자본의 시대, 노동이 사라진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이런 와중에 노동법을 안다고 해서, 노동자의 권익이 단시일에 보호·신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대학생이라면 노동법을 배워야 한다. 노동과 그 현실에 관한 체계적인 교육과정도 필요하다. 현재의 노동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노동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지금의 불합리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데 노동법은 유용한 도구이자 무기이기 때문이다.

김동수 광운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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