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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19 19:19 수정 : 2014.02.19 19:19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아유, 늦으면 안 되는데.’ 소영은 버스에서 내려 뛰었다. ㅎ신문사가 주최하는 대담에 청소년 참가자로 초청받았던 것이다. 대담 제목은 ‘기본소득 도입 10년, 시민들에게 듣는다.’ 대담 장소로 들어가니 다른 사람들은 도착해 있었다. 나이도, 하는 일도 다양해 보였다.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올해 2024년은 기본소득이 도입된 지 10년째입니다. 현재 전 국민에게 매달 150만원씩 기본소득이 지급되고 있죠? 기본소득이 10년간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보려 합니다.” 소영은 약간 난감했다. 매달 20일이면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데, 어릴 때부터 늘 그랬으므로 뭐가 특별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때는 엄마가 통장을 관리해주셨고, 중3 때는 모인 돈으로 혼자 아프리카 배낭여행 한달 갔다 왔고, 지금 고3인데 졸업하면 아프리카에 다시 가서 봉사활동하면서 틈틈이 자연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려구요. 다큐멘터리 감독이 꿈이거든요. 부모님이 뭐라 안 하시냐고요? 뭐 제 돈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 하는 건데….”

참가자들이 웃었다. 한 참가자가, 10년 전만 해도 청소년들은 경제적 능력이 없어 진로를 정할 때 부모님의 말을 거부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대학에 가더라도 연봉 높은 회사에 취업할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해야 했고, 당연히 취업에 유리한 대학과 학과를 가려고 몇백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했다는 것이다. 소영은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옛날 기사를 검색하다가 성적 비관으로 자살한 청소년 이야기를 본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왜 꼭 대학에 가려 했을까?’ 하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30대 중반인 어떤 아저씨는 기본소득이 도입되기 전에 제조업 비정규직이었다고 한다. 비정규직이 뭐지? 소영은 궁금했다. 아저씨는 그때 아침 8시부터 잔업 포함해 저녁 8시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일했다고 한다. 소영은 아버지가 직장에서 오후 2시면 퇴근하는 데 익숙해서, ‘일하는 걸 참 좋아하는 분이시구나’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저씨는 그렇게 일해야 한달에 200만원 정도 벌어 겨우 가정을 꾸려갈 수 있었다고 했다. 소영은 또 한번 놀랐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었단 말이야? 자기 시간도 없이? 아저씨는 기본소득을 받으면서는 굳이 전처럼 일할 필요가 없어 일을 3분의 1로 줄였다. 다들 노동시간을 줄이니까 회사는 직원을 붙들기 위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했단다. 아저씨는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해서 대학원 철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고 한다.

40대의 한 아주머니는 목소리가 호탕한, 여장부 같은 분이었다. 그전에는 형편이 어려워 시급 5000원에 식당일을 해야 했지만, 기본소득이 생기고 나서 시민단체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시민운동이 아주 적성에 맞아, 시의회의 예산 사용 비리를 발견하고 불독처럼 물고 늘어져 의원들의 사과를 받아냈다고 한다. “제가 식당에서 일할 때 거드름 피우며 드나들던 사람들도 이젠 절 보면 먼저 와서 인사하지요.” 소영도 통쾌해졌다. 예술가라는 어떤 분은 예전엔 예술가들이 굶어죽기도 했다고 한다. 기가 막혔다. 자기 반 친구들의 절반은 작곡·미술·만화 같은 진로를 고민한다. 그런데 전에는 예술가보다 공무원이 되려는 청소년이 많았다니.

들어보니 기본소득의 도입 과정이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반대자들은 기본소득을 주면 사람들이 아무도 일을 안 할 거라고 했단다. 세상에! 소영은 기본소득을 받지만 아무 일도 안 하고 뒹굴뒹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데! 기본소득을 반대한 사람들은 직장에 나가 일한 사람만 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그럼 아침에 골목의 눈을 치운 사람은 돈을 못 받고, 남이 치워준 길로 회사에 간 사람은 돈을 받는 거네? 불공평하잖아?’ 소영은 중얼거렸다. 기본소득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2월23일, 가톨릭청년회관에서 기본소득공동행동(준)이 결성된다. 미래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오준호 작가·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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