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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자급자립으로 세상을 바꾸는 농민에게 월급을! / 변현단 |
선거가 또 닥쳤다. 대한민국의 선거에는 ‘경제와 일자리 창출’이 최고 이슈다. ‘경제 회생과 일자리 창출’을 믿고 이명박과 박근혜를 찍어도 일자리는 창출되지 않았고 잘사는 사회는 되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를 기대하면서 김대중과 노무현을 찍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정치 수장이 바뀌면 이 나라가 바뀔 것이란 환상을 국민들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이 사회경제 시스템을 바꾸려면 어렵게 얻은 막강한 권력을 내놓아야 할 정도의 치열함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정치가가 있는가?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바닥을 치는데 수출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한국 경제가 어떻게 좋아질 수 있을까? 산업금융 자본주의 경제는 100년의 세월 동안 화석연료를 모두 끌어다가 석유 세상을 만들었다. 우리는 석유의 화학적 분리에 의한 것을 먹고 마시고 입고 생활하고 있다. 기업은 일회용의 세상을 만들었고 우리는 쓰고 버리는 사회를 만들었다. 이제는 대부분의 석유 산업이 그 규모를 현저히 줄여나가고 있다. 자동차와 선박 회사 등 각종 제조업체가 문을 닫고 건설회사가 문을 닫는다. 자본주의 경제는 이제 일자리를 주지 않을뿐더러 현재 가진 일자리조차 사라지게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인간 본연의 활동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식주의 활동이다. 농경사회는 종속된 사회가 아니라 자급자립의 사회다. ‘식량을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처럼 스스로 식량권을 갖고 남들로부터 지배를 받지 않는 삶의 방식이다. 요즘 사회경제적 미래는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시골로 향하도록 한다. 사실 귀농, 귀촌 하는 사람들이 자급자립에 몰두하는 것이 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어떤 재해에도, 어떤 세계 경제 구조의 변화에도, 에너지 고갈에도 자신의 생명권을 지킬 수 있도록 자립적 생활 방식을 고수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자립 인간이 많아지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회경제적 혁명을 도모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 사회에 살고 있는 한 완전한 자립을 이루기는 어려운 일이다. 국가와 개인, 사회와 개인의 연결에 필요한 최소한의 화폐가 필요하다. 상품자본사회 시스템에서 농민으로 산다는 것은 여전히 그리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농업 정책은 농가 소득 보전에 맞추어져 있다. 그 방법은 대부분 지원금으로 일관한다. 농가 소득과 농민 복지를 위한 수많은 정책 지원금을 농민들은 ‘눈먼 돈’이라고 부른다. ‘눈먼 돈’을 끄집어내어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런 돈이 농가 소득을 향상시키고 농민의 생활을 나아지게 하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는 일이다.
농촌 지원과 국가적 일자리 창출 등 관련 예산으로 20살 이상 모든 농민들에게 매달 월급을 주면 어떨까? 현행법상 300평 이상 90일 이상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면 된다. 개인이든 법인 소속이든 농사를 짓는 성인이라면 무조건 매월 급여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자급자립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해주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2014년 농축산식품 예산이 13조5344억원. 이 예산의 사용처는 농가 소득 보전을 위한 직불제와 재해보험, 건강보험과 같은 농촌 복지, 농식품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금 등이다. 2010년까지 등록된 농어업인이 약 300만명이다. 이것을 300만 농민에게 나눠 주면 된다. 굳이 애써 행정 인력을 낭비하고 사각지대를 형성하면서 지원금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13조5344억원을 300만으로 나누면 1인당 451만원, 매달 37만6000원이 돌아간다. 게다가 지자체의 정책자금 및 농어촌 대책 자금, 일자리 창출 비용, 친환경 생명산업 집중 투자 비용 등 농민을 위한 5조원의 재원도 포함한다면 기본소득 재원은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다. 농민 개인에게 기본소득 매월 50만원을 주면, 실업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 20살 이상 젊은 인력들을 농촌으로 유도할 수 있다. 대학이라는 빚잔치와 도시의 ‘알바’ 인생에서 젊은이들을 벗어나게 할 것이다. 둘째, 50만원은 생활경제의 기초를 형성한다. 매월 소요되는 돈을 벌어야 하는 부담이 줄어서 손수 자급하는 생활에 더 힘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셋째, 행정기관이 대폭 축소되고 작은 정부로서 인력이 절감된다. 넷째, 농자천하지대본의 실현이 가능하다. 식량 주권을 지키고 무엇보다 국가의 생명권이 위협받지 않을 것이다. 농민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농민이 15% 이상 되는 나라가 될 것이다. 다섯째, 농민 기본소득에다 지역화폐 20%를 포함하면 자립순환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지역화폐는 신뢰할 수 있는 참가자들이 노동을 교환하는 시스템인데, 좀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역화폐를 지자체에서 종이 화폐나 상품권으로 만들어서 지역에서만 유통되도록 한다. 지역 자체에서의 구매력을 높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 이자가 붙지 않은 순전한 교환 매개체이다. 여섯째,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다. 1인가구가 살림을 합치면 소요되는 비용이 줄어든다. 싱글들의 살림이 합쳐져 새로운 형태의 가족, 마을 공동체로 결합할 수 있다.
올 6월에는 지자체 선거가 있다. 이제는 복지 정책이나 일자리 창출, 경제 부흥이라는 허구에 국민이 놀아나서는 안 되며 각 정당과 정치가들은 더이상 경제나 일자리로 국민들에게 사기를 쳐서는 안 된다. 노령연금처럼 복지 대상의 연령대 논쟁도 필요치 않고, 수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복잡한 행정적 조사를 실시할 이유도 없다. 행정 절차와 소모적인 인력 비용을 절감하면서 긍정적 효과를 확실히 보장해주는 기본소득, 농민이기만 하면 무조건 월급을 주는 농민 기본소득제를 채택하는 일만 남는다.
농민에게 월급을 주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올해 지자체 선거에서 핫 이슈는 무엇일까? ‘국민 행복’을 우선으로 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도 당선되자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수많은 공약을 파기하거나 변형했다. 각종 복지 정책의 재원에 대한 사전 검토도 없었을뿐더러 기존 예산 집행 항목을 그대로 두면 재원 마련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 집행되고 있는 항목을 직접 이해 당사자들에게 돌리면 될 일이다. 따라서 우리 자신이 우리의 세금을 우리의 월급으로 돌려달라고 당당히 주장하면 된다. 세금 납부의 의무를 가진 국민은 세금 사용처에 대해서 주장할 권리도 가진다. 우리의 세금을 우리를 위해 사용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고작 300만명도 안 되는 농민으로 어떻게 식량 자급과 국민의 생명권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수출입 경제에 의존한 국가 경제가 어떻게 국민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을까? 이런 많은 난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것이 농민기본소득제 외에는 없다. 농민에게 매달 최소 현금 50만원과 각 지자체에서 20만원에 해당하는 지역화폐(각 지자체에서 관할)를 주면 된다.
갑오년이다. 인간이 숨 쉬고 활동하고 입고 먹는 매일의 ‘자질구레한’ 일상적인 삶이 바로 혁명임을, 농민을 잘 모셔야 그 나라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되새기며 갑오년 동학 농민이 그러했던 것처럼 다시 들불처럼 일어서면 어떨까.
변현단 곡성 농부·<자립인간>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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