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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19 19:09 수정 : 2014.03.19 19:09

며칠 전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이스라엘과 가장 가까운 나라의 총리답게 메르켈은 평화 협상과 정착촌 건설 문제에 대해서 쓴소리도 하였지만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나라의 수장으로서 작은 선물을 잊지 않았다. 나치 정권 치하의 이른바 ‘게토’에서 공장 등에 취업하였던 유대인들에게 연금 지급을 약속한 것이다. 독일이 1952년 룩셈부르크 협정에서 유대인들에게 나치의 전쟁 범죄에 대한 보상을 약속한 후 개인들에게 지급한 보상액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1983년까지만 700억 독일 마르크(DM)였다니(당시 1달러=약 2DM) 아직까지 계속되는 연금 등 전체 누적 액수는 상당할 것 같다. 여기에다 독일 정부가 이스라엘 건국 초기부터 발전소, 수도관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 등 방식으로 이스라엘 정부를 지원한 액수는 별도다. 금전적 보상과는 별도로 독일 정부는 나치가 유대인에 대해 저지른 전쟁 범죄를 독일 국민의 공동 책임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일각에서는 메르켈 총리가 이번에 유대인 징용 피해자에 대한 연금 지급을 약속하고 가기는 했으나 이제는 이스라엘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징용이나 홀로코스트 등 2차 대전 피해자들의 여생을 돌보아야 할 때가 아니냐는 자성조의 비판도 나오고 있다. 말하자면 그동안 전쟁 범죄에 대한 보상을 너무도 충실히 이행해 온 독일에 마지막 한푼까지 요구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역설적 자기반성이다. 독일이 굳이 주장하지 않아도 독일은 이스라엘에게 이미 보통 이상의 특별한 국가가 된 것이다.

2015년은 독일과 이스라엘이 정식 수교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선대에 저질러진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과하고, 보상까지 한 독일은 이제 이스라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양국 국기로 디자인 된 수교 50주년 로고를 정하는 등 여러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내년은 우리가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과거의 일들 때문에 두 나라는 기쁜 마음으로 축하 행사를 서로 의논할 형편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이번에 메르켈 총리에게 이스라엘 최고 훈장을 수여했지만 우리에게는 그저 딴 세상의 일로 여겨질 뿐이다.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어떤 생각일까? 그들은 과거사에 대한 사과는 할 만큼 했고, 어느 선에서 끊지 않으면 한국과 중국의 한도 끝도 없는 사과 요구 때문에 일본이 ‘보통’ 국가로 되는 것을 마냥 늦추기만 해야 한다고 걱정하는 것 같다. 또 ‘천황’을 신격화해야 하고 신도라는 특유의 조상 숭배 전통이 국민 정체성의 일부인 일본의 특수성을 들면서 독일만큼 잘못을 한 것도 아닌 일본이 그 정도 사과하고 반성을 했으면 이제는 체면을 중시하는 동양적 정서를 모르지 않는 주변 국가들이 이를 이해해 주어야 할 순서라는 투정 어린 불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일본이 진정한 의미의 보통 국가가 되려면 있었던 일은 있었던 일로 인정하고 그들만의 문화적 특수성이 아닌 보편적인 기준에 따라 그 일들을 평가하고 그것을 후세에게 가르칠 수 있는 아량과 양식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식성이나 언어적 유사성은 고사하고 일반적 정서나 사고방식의 면에서 우리와 누구보다도 가까운 일본이고, 또 앞으로 동북아 지역의 여러 문제를 해결해 가거나 협력을 확대해 가는 데 동반자로서 중요한 일본이기에, 그리고 역사 왜곡과 과거 미화를 통해 정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의 어긋난 행동을 개탄하는 양식 있는 지성인이 없지 않은 일본이기 때문에 비정상적 국가로 남지 않고 정상 국가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자기 직시의 과정을 거부하려는 유별난 일본 병이 자기 정화를 통해 치유되기를 바래보는 것은 어불성설일까?

김일수 주 이스라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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