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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니시진오리, 쓰케모노 그리고 재일조선인 / 허영은 |
지난 3월15일 일본 교토에 있는 리쓰메이칸대학에서 ‘강제동원 진상규명회’ 전국 연구집회가 있었다. 올해로 일곱번째를 맞는 이번 집회에서는 일본 전국에서 모인 연구자와 엔지오(NGO) 단체들이 일제의 식민지 책임과 강제동원의 법적 문제, 전몰자 유골 송환과 같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발표했다. 필자는 1년간 리쓰메이칸대학에 객원연구원으로 오게 되어 학회에 참석하고 이튿날에는 조선인 노동자가 노역한 에이잔 등산열차와 윤동주 거주지, 재일조선인 거주지역인 다나카 지구 등을 견학하는 필드워크에도 참가했다. 전쟁 책임을 부정하며 우경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일본 정세 속에서 일제의 식민지 책임과 강제동원의 책임을 촉구하는 모임에 100명이 넘는 시민, 연구자들의 자발적인 모임이 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동안 교토를 그저 일본 문화를 대표하는 곳으로서 인식하고 있던 필자로서는 이번 학회와 필드워크를 통해 교토를 기반으로 한 일본의 전통문화가 상당 부분 재일조선인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와 동시에 그동안의 무지에 대해 상당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에이잔 등산열차는 교토 북부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히에잔과 교토를 연결하는 교통수단이다. 이 열차는 일본에서 가장 경사가 가파른 것으로도 유명한데, 1925년에 시작된 이 철도 공사에 많은 조선인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1920~30년대에는 강제동원령이 행해지기 이전으로 이들 노동자들은 식민지 조선에서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어 일본인들이 기피하는 가혹한 노동현장에 투입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피지배민으로서의 조선인들은 혹독한 노동 현장에서 사고로 죽거나 임금 체불, 구타와 같은 차별대우를 감수해야 했다.
교토가 세계에 자랑하는 문화로 기모노에 사용되는 ‘니시진오리’라고 하는 직물과 절임 음식인 ‘쓰케모노’가 있다. 지바상과대학의 다카노 교수는 일본의 대표적인 직물과 쓰케모노도 조선인 노동자들의 가혹한 노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문화라 지적하고 있다. 화려한 직물의 아름다운 빛깔을 내기 위해서는 독특한 공정이 필요한데, 직물을 증기로 찐 후 강물에 늘어뜨려 씻어내는 방식으로 천에 붙어 있는 풀이나 염료를 제거한다. 형형색색의 빛깔을 지닌 직물이 교토의 강물에 늘어진 풍경은 일본을 대표하는 풍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천을 가마솥에 찌고 한겨울 추위 속에 차가운 강물에 씻어내는 가혹한 작업을 견뎌낸 조선인 노동자의 피와 땀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교즈케’라는 이름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쓰케모노도 재일조선인들의 노동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교토의 대표적인 쓰케모노인 순무, 가지 절임에 필요한 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분뇨 운반을 담당했던 것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재일조선인들이었다. 이밖에도 교토와 오사카를 잇는 게이한 철도공사나 교토의 도로 정비 사업에도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투입되었다. 특히 1928년에 시작된 한큐선은 쇼와 일왕 즉위식에 맞추어 급하게 진행된 관계로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다고 한다.
교토는 일본 문화를 대표하는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교토대를 비롯한 유수한 대학들이 많은 교육도시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2012년부터 리쓰메이칸대학, 교토대학, 도시샤대학, 불교대학의 4개 대학이 모여 ‘교토 코리아학 컨소시엄’을 결성했다. 이 모임을 통해 교토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한 보상 문제, 일본 교과서 문제, 재일동포의 실태 연구와 같은 다양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이 컨소시엄의 중추적인 구실을 한 것이 리쓰메이칸대학 코리아연구소인데, 이 연구소는 박정희 정권 시절 서울대 재학 중 간첩으로 몰려 혹독한 고문을 당한 서승 교수를 초대 소장으로 2005년 발족한 연구소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한국에서 연구비 지원이 있었으나 그 이후에는 지원이 끊겼다는 사실이다. 갈수록 정치적 대립이 심화되는 한-일 관계에서 이런 민간 차원의 연구와 교류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된다.
요즘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한-일 관계 악화로 교토에 오는 한국인 관광객이 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3월 말부터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교토에 오는 관광객도 늘어날 것이다. 혹시 교토를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아름다운 기모노를 입은 일본의 게이샤나 전통 일본식 음식점이 늘어선 가모강 강가에서 교토의 도로와 철도를 만들고 일본의 전통적인 의식 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큰 몫을 한 재일조선인들의 피와 땀도 함께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허영은 대구대 일본어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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