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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건보공단의 담배소송 재고해야 / 박교선 |
건보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흡연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건보공단은 흡연이 질병위험도를 높인다는 사실이 빅데이터로 증명됐고,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를 추정한 항소심 판시 등을 근거로 승소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담배소송의 대리인으로 판단해볼 때, 이번 소송은 승소 가능성이 희박할 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국민의 혈세만 낭비하는 정치적 이벤트로 보인다.
건보공단 소송이 흡연자의 손해를 대신 배상청구하는 것이라면 개개인의 담배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개별 흡연자들은 15년간 이어진 기존 담배소송의 하급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담배의 결함이나 담배회사의 위법성이 전혀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흡연과 일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될 수 있는 요건만 제시됐을 뿐이다.
건보공단이 근거로 삼는 빅데이터 역시 개개인의 병력과 원인을 밝혀주는 것인지 아무런 검증이 안 된 상태다. 더구나 통계적 자료에 기초한 인과관계만으로는 법률상의 상당인과관계가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도 넘어야 할 산이다.
혹시 이번 소송이 폐암 등 치료비 지출로 건보공단이 직접 입은 손해배상청구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비용은 환자의 흡연으로 인한 것이고, 담배회사의 위법행위가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배상을 청구할 손해라고 보기 어렵다. 이는 마치 교통사고 치료비를 자동차회사에 청구하는 것과 같아 어불성설이다. 일례로 프랑스에서는 건강보험기금(CPAM)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직접적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했지만 각하 판결이 내려져 그대로 확정된 바 있다.
흡연자는 건강증진부담금을 내는 데 반해 담배회사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주장도 타당치 않다. 이 부담금은 담배가격을 정부가 통제하지 않는 한 담배가격에 반영되고, 담배회사들이 받은 판매대금 중 일부를 건강증진부담금으로 국가에 납부한다. 해마다 담배회사들이 내는 건강증진부담금이 1조6000억원에 이른 상황에서 치료비용까지 부담하게 된다면 이는 실질적으로 부담금의 이중부과 내지 조세전가로 볼 수 있다.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논란도 문제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2011년 기준 비만으로 인한 진료비는 2조6919억원, 음주로 인해서는 2조4336억원이 지출됐다. 건보공단 논리대로라면 간암과 비만 관련 질병을 유발한 주류회사와 식음료회사도 책임이 있다는 말인가? 또 매연, 유독가스 등 발암물질 배출에 관련된 자동차회사, 정유회사도 책임져야 하는가? 제조사의 위법행위가 없다면 그 책임이 없기는 모두 마찬가지다.
이번 소송도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것이다. 여기서 건보공단이 패소한다면 국민의 혈세만 낭비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고, 승소한다 해도 담뱃값이 올라 주 흡연층인 서민들의 부담만 늘어나고 물가인상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처럼 건보공단의 소송은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잘못된 선택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 승소 가능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 건보공단은 소송을 앞두고 유리한 여론 조성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이제라도 현실을 직시하면서 좀더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길 바란다.
박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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