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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독일선 엄격한 규제가 창조경제의 돌파구인데… / 염광희 |
국가(State)의 존립 근거를 설명하는 여러 이론 중에서, 199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더글러스 노스 교수 등의 신제도주의 학자들은 공정한 경기를 위한 심판으로 정부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개인이 되었든 기업이 되었든, 심판이 없는 조건에서 행위자들은 자기만 더 배불리 먹겠다고 싸우다가 결국 모두가 피해를 입는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행위자들이 서로 약속해서 세운 심판이 바로 국가이자 제도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완화를 들고나왔다. 쳐부술 원수라는 격한 표현까지 동원하며 규제를 풀겠다고 한다. 그 며칠 뒤,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를 대폭 완화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신제도주의 입장에서 이를 보자면, 축구 경기에서 점수가 안 난다고 심판이 골대를 키우거나 오프사이드 없애자는 논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점수가 안 나는 것은 골대가 작기 때문이 아니라 축구팀의 실력이 없기 때문인데, 경기규칙 탓을 하는 것이다. 이는 심판의 존립 이유 자체를 망각한 것이다.
환경부가 내놓은 환경영향평가와 지역 주민의 동의 요건 완화와 관련해서 박근혜 정부가 해법을 잘못 찾았다는 것을 며칠 전 방문한 독일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독일은 환경규제가 까다롭다는 유럽연합 안에서도 가장 엄격한 제도를 갖고 있고, 더불어 주민 재산권을 엄격하게 보호하는 나라이다.
독일이 재생가능에너지로 전체 전력의 25%를 달성한 데에는 풍력발전기와 태양광발전기 설치를 제한하는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엄격한 환경영향평가와 더불어, 각 주에 설정한 ‘배타적 풍력발전 설치 우선구역’ 제도로 무분별한 풍력발전 확대를 가로막은, 박근혜 정부가 보기에는 경제 활성화를 방해하는 정말 불필요한 규제가 성공의 중심에 있다.
독일은 지역 주민 한두 명이 풍력발전에 강하게 반대하기라도 한다면, 그 사업은 아예 삽질을 시작할 수조차 없다. ‘법의 나라’ 독일에서 지역 주민들이 소송에라도 들어간다면 사업자는 패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환경 친화적인 태양광 발전기라 하더라도 산 깎고 나무 자른 곳에 설치하겠다는 것은 독일의 환경규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규제 아래에서 독일의 에너지 기업들과 지역 주민들은 묘안을 찾아냈다. 시민발전소 개념이 그것이다. 기업이 지역 주민과 공동 소유로 지역 환경에 영향을 덜 주는, 규정에 적합한 풍력발전소,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는 아이디어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결과 지역 주민들은 풍력발전기 태양광발전기의 주인이 되어 과외 수입을 얻고 있고, 해당 지자체는 일자리 창출과 세수 증대를 누리고 있다. 독일의 엄격한 규제가 만들어낸 ‘창조 경제’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한 환경영향평가와 지역주민 의견 수렴으로, 그 절차에 들어가는 돈과 시간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지역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애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거래비용을 치르고 있다. 22조를 쏟아부은 4대강 사업은 수질 개선은 고사하고 녹조라떼뿐 아니라 자연 생태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쳤다.
날림으로 지역 주민의 동의를 받아 시작한 밀양 송전탑은 벌써 두 분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사업 반대를 외치고 있다. 반면 사업을 진행하는 쪽에서는 밀양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보상을 더 받으려고 집단행동을 하고 있다는 악소문을 유포시키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의 개발사업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에게 돈 몇푼 쥐여주는 전략으로 반대를 무마했던 정부의 보상 정책에 대한 학습효과이다. 독일이 엄격한 규제 아래에서 창조적인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동안, 우리는 있는 규제도 지키지 않으려는 사업자들의 기회주의 행태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 것이다.
골 안 난다고 오프사이드를 없애고 골대의 크기를 두 배 세 배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창조적인 플레이를 기대하는 것은 더욱 요원할 것이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다면 박근혜 정부는 규제 완화가 아니라 본인이 늘 얘기했던, 원칙을 지키는 정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추상 같은 심판이 있어야 선수들이 다른 데 신경 안 쓰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다.
염광희 베를린자유대학 환경정책연구소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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