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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14 18:38 수정 : 2014.04.14 18:38

골로 가다는 죽다의 속어이다.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는 말이다. 이 말이 처음으로 생겨나게 된 유래의 장소가 대구 가창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영남대 재단의 땅으로 바뀌었지만 1950년 한국전쟁 초기에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를 포함하여 민간인 1만여명이 군과 경찰에 의해 총살당한 우리나라 최대의 학살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가창골로 가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길이 되고 말았으니 그때부터 “골로 가면 곧 죽음”이라는 의미로 구전되어 일상용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디 가창골뿐만일까? 한국전쟁은 전국 방방곡곡이 죽음의 굿판이고 집단 학살지였다. 얼마 전 화쟁코리아 백일 순례길의 도법 스님을 모시고 천도재를 올렸던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 경산 코발트광산, 함평 불갑산도 그중 한 곳이다.

이 야만스런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유족들은 나도 잘못 걸려들면 아버지처럼 어느 골짜기로 개처럼 끌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와 불안감에서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채 60년 세월을 숨죽여 살아야 했다. 엄혹한 세월 속에서도 1992년과 1994년 제주도에서 4·3 사건의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굴되어 무연고 묘지에 안장되었으며 1995년에는 고양 금정굴에서 유족 스스로가 나서 153구의 시신을 발굴하여 세상에 알림으로써 잃어버린 진실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만들어져 2006년 12월 정부 차원에서 유해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매장 추정지 168개소에 대한 지표 조사 및 유해발굴 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 59개소의 매장 추정지에서 유해발굴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2007~2009년 전남 구례 봉선산,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 대전 산내 골령골, 충북 청원 분터골, 충북 청원 지경골, 전남 진도 갈매기섬, 경남 산청 원리, 경남 산청 외공리, 충남 공주 상왕동, 전남 함평 불갑산,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등 11군데의 학살 매장지를 발굴하여 1617구의 유해와 5600여점의 유품을 발굴하였다.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된 이후 정부가 민간인 희생자의 유해 발굴에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전쟁 때 전사한 국군 유해발굴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2011년 5월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에서 국방부가 발굴한 유해 33구가 경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으로 판명되어 현재 국방부 감식단이 임시 보관 중에 있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민간인 희생자의 유해들은 아직도 전국 곳곳에 방치되어 있음에도 국가는 피해자와 그 유족들에게 마땅히 지켜야 할 국가적 책무인 법적, 정치적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마저 회피한 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금년 2월에는 한국전쟁유족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이라도 먼저 나서 아픈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앞장서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출범하게 되었고 그 일환으로 이번에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35구의 유해를 발굴하게 되었다.

“영령들이시여!

가해자가 누구인지, 왜 죽였는지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저희 유족들은 가슴의 피멍과 한을 삭이지 못하며 백발이 성성한 채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수십년 해원하지 못하고 캄캄한 땅속에 내팽개쳐진 원혼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습니다.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서 유해발굴과 안장시설을 조성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컨테이너 속 플라스틱 상자에 임시로 보관중인 유골 앞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던 진주 유족회장 유복자 강병현의 아픔이 이 나라의 아픔이어야 한다. 이 외침을 외면해선 안 된다.

정석희 한국전쟁유족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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