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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관계’ 하지 않는 대학 / 오대성 |
“학점만 받으면 되지 뭐”(학생). “수업 시간만 때우면 되지 뭐”(교수). 우리 대학에 ‘관계’(Relationship)가 사라지고 있다. 교수는 지식 상품의 단순 공급자로, 학생은 구매자로 변하는 중이다. 학교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학 원리를 들이댄다. 우리 대학은 시장(Market) 혹은 공장(Factory)으로 전락하고 있다.
지식 공장의 한 사례가 최근 들어 많이 늘어난 대형 강의다. 대학정보 공시사이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서울 사립대 23개교에서 100명 이상이 수강하는 수업이 1804개라고 한다. 연세대는 200명 넘게 듣는 초대형 강의가 54개나 된다. 대형 강의를 많이 개설하는 이유는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대형 강의에 불만이 많다. 좁은 공간에 수백명이 모여 있다는 물리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대형 강의가 싫은 본질적인 이유는 그 안에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름을 부르며 얼굴을 확인하는 기본적인 대면은 전자출결이 대신한다. 교수는 수업에 누가 있는지 모르고, 학생 역시 교수에게 익명의 존재로 남을 뿐이다. 또한, 학생 개개의 의견을 묻지 않는 수업 구조는 교수의 일방적인 전달만 강화한다. 지식은 교류되지 않고 사람도 소통하지 못한다. 포기된 관계 앞에 남은 것은 자신뿐이다.
이렇듯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익명적이고 일방적이라면 대학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수업을 통해 지식과 생각이 교류되고, 교실 밖에선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대화할 수 있어야 대학(大學)이다. 지식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 학문적 성장을 이루는 게 대학 교육의 1차적 목표다. 동시에 인간으로서 어떤 철학을 갖고 삶을 꾸릴 것인지, 우리 사회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 자신과 공동체를 둘러싼 고민도 필요하다. 대학 교육의 2차적 목표다. 아직 부족한 학생이기에 이런 고민과 성찰을 스스로 하기는 어렵다. 교수의 존재 이유는 이를 돕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관계가 형성된다. 이것이 대학의 역할이다. 이런 대학을 졸업한 학생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또한 타인과의 소통과 협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공동체 구성원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이런 대학에서 배출된다.
그러나 우리 대학은 지금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형 강의와 사이버 강의를 늘리고, 전임교원 대신 비정규직 강사를 쓰고, 수업 시수마저 줄인다. 모두 비용 최소화만 고려한 방법이다. 성찰이나 관계에 대한 고민은 없다. 우리 대학에 필요한 건 경영이 아니라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대성 동국대 행정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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