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4.17 19:02 수정 : 2014.04.17 19:02

일요일 오후 4시30분. 이 시간은 절묘한 의미를 품고 있다. 새로운 한 주를 맞기 위해 여유 있게 워밍업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하루 해가 기울면서 자칫 주말의 여유도 아쉽게 흘러가 버릴 수 있다. 이 시간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 선잠을 깬 것처럼 짜증이 살짝 난다.

4월13일 일요일 4시30분은 정말 시원하고도 섭섭했다. 지난 한 주의 피로감을 날려보내고 다가올 한 주를 준비하는 명상의 시간처럼 아끼던 그 시간대를, 나는 6개월 동안 거의 빠짐없이 <케이팝 3>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독된 듯 시청하게 된 프로그램이 이번에 끝났다. 중독에서 벗어나, 이제 나만의 시간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되니 후련했다. 그런데 마음 한 곁에 더 크게 자리잡은 이 섭섭함은 뭐지?

나는 꿈을 가진 청춘들의 눈물과 성장을 응원했고, 그들이 좌절하지 않고 어디에서든 꿈을 피워 나가길 기원했다. 특히 그 가운데 ‘천재 기타 소년’ 샘 김을 관심 있게 봐왔다. 같은 또래의 아들을 뒀고 그의 기타 연주가 대견하기도 했지만, 샘 김의 맑은 미소가 좋았다. 무엇보다 경쟁 속에서도 자기만의 중심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샘 김을 보면서 나의 아이에게서, 우리 아이들에게서 멸종한 듯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시대가 뺏어버린 저 풋풋한 자유…. 맘껏 연주하고, 맘껏 노래하고, 맘껏 부끄러워하고, 맘껏 실패하고, 맘껏 또 도전하고, 맘껏 몰입하는…. 내내 저 아이가 부러웠고 그의 부모가 생각났다.

맘껏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아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돌아다니긴 하지만 불안하다”고. 먹고살지 못할까 봐, 친구들과 나의 환경이 달라지면 친구를 잃을까 봐. 예쁜 고민을 하는 아이에게 나는 용기있는 장군처럼 답을 했다. “굶어서 죽을 일은 없어. 환경이, 스펙이 다르다고 멀어질 친구는 떠나보내는 게 나아.” 어서 나가서 재밌게 맘껏 돌아다니라고 했다. 어서 봄볕 속으로 나가라고.

그런데 아들에게 한 말이 종일토록 명치에 얹혀 있다가 질문으로 내게 되돌아왔다. 그것뿐이냐고…, 후회하지 않겠냐고…. 확신을 갖지 못한 부모의 말이 아이한테 되레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안다. 그럼 차라리 “그래도 할 건 해야 한다”고 말할까? 그게 그나마 성공의 확률이 높다고 하는데….

악동들은 노래한다. ‘인공 잔디’가 아닌 차라리 맨살을 부끄러워하더라도 생기있는 잔디이고 싶다고. 나의 아이도 그들처럼 시듦의 아름다움을 아는, 바람을 느끼는 정말 잔디로 살길 바란다. 그들이 할 것이란, 그건 저 하고픈 대로 맘껏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가 자신의 자유의지로 스스로를 키우길 바란다.

무엇을 해야 한다고, 혹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충분히 고민하고 답을 찾고 맘껏 실패하기를, 맘껏 도전하기를…. 멸종위기에 있는 ‘소년의 풋풋한 자유’를 기성의 삶의 잣대로 점수 매기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우승자를 향한 샘 김의 축하의 웃음을 보면서, 진정으로 우리 아이를 응원하겠다고 다짐했다. 나 스스로도 멸종된 풋풋한 자유를 살려내야겠다. 피기도 전에 시드는 듯한 요즘의 소년들을 보는 엄마로서, 소년들에게서 너무나 많은 것을 깨우친, 어느 때보다 성스러운 축복을 받은 일요일 4시30분이었다.

김수정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