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4.21 19:06 수정 : 2014.04.21 19:06

비통하고 침통하다. 깊고 차가운 바닷물 속에, 생사를 알 수 없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온몸을 담근 지 닷새가 지나고 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수백명의 고등학생들이 단체로 승선했던 터라 더 가슴 아픈 이 사고를 두고 지금 이 시각에도 물 위에 있는 어른들은 잇속에 따라 갑론을박하기 바쁘다. 사고 신고와 구조 활동까지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가 하면, 촌각을 다투는 구조 상황에서 서툴고 무능한 정부의 대처 방식에 온 국민의 마음이 타들어가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아예 화근이 되는 ‘수학여행’ 자체를 없애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각 교육청에서는 수학여행을 포함한 각종 현장체험학습을 보류하거나 취소하라고 지시한 한편, 현재 전국 시·도 교육청 누리집에는 “수학여행을 폐지시키라”는 청원이 쇄도하고 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에 꽃다운 아이들이 목숨을 잃은 사례는 이미 너무도 많다. 오래전 씨랜드 사건이나, 천안함 사건, 지난해에 있었던 해병대 캠프 사고, 올해 초 경주에서의 부산외대 신입생들 사고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죄 없는 젊은이와 아이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음에도 어리석은 이 사회는 언제나 똑같이 허술하고 엉뚱한 대처방식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10여년간 대안학교 교사로 있었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결국, 이 사태가 더욱 아이들의 경험을 제한하고 억압하는 교육방식을 강화하게 될까 봐 염려가 되기도 한다. 긴 시간, 여러 차례 체험학습을 떠나는 대안학교에서의 교육과정을 보면, 아이들은 교실에서보다 실제로 세상을 만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체득하게 된다. 한달여간의 ‘움직이는 학교’나 몇개월 동안의 장기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불쑥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 경험의 힘을 알 수 있다.

체험이 제한되어 있는 공교육에서의 수학여행은 주입식 교육에 꽁꽁 묶여 있는 아이들에게 삼년에 한번 있는, 그나마 숨통 트이는 시간일 것이다. 문제는 수학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의미를 살려내지 못한 관행적 태도로 집단 이동을 하는 것에 있다. 학교를 벗어나니 아이들은 들뜰 수밖에 없고, 교사는 인상을 쓰며 수백명의 아이들을 통제, 억압하면서 행사 치르듯 다녀올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수학여행의 현실이다. 수학여행이란 교육과정은 본디 “학생들이 평상시에 대하지 못한 곳에서, 자연 및 문화를 실지로 보고 들으며 지식을 넓히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앞으로 이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수학여행을 폐지할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다양한 상황에 대한 직관을 기를 수 있도록 안전망을 기획하고 오히려 삶과 연결된 체험 교육의 기회를 넓혀야 한다. 이번 사고만 해도 시키는 대로 움직이도록 길들인 교육환경이 아이들로 하여금 이 긴박하고 예외적 상황에 대해 직관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 면도 있다.

수학여행을 제대로 된 교육과정으로 만들려면, 내용은 다양해져야 하고 단위는 작아져야 한다. 이런 형태는 작은 단위로 운영하고 있는 대안학교나 새로운 시도를 꾀하고 있는 혁신학교 등에서 그 사례를 찾아 배울 수가 있다. 이를테면 의정부여중은 학년별 교육과정과 수학여행 주제를 접목해, 시골의 한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에게 국수를 삶아 드리는 등 봉사활동을 하며 ‘함께하는 삶’을 배우고 있다. 또한 경기도 용인에 있는 흥덕고 2학년 학생들은 수학여행 대신 ‘통합기행’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학급구별 없이 뜻 맞는 친구 10~20명 정도가 모여서 장소부터 탐방 내용까지 모든 일정을 스스로 계획해 기행을 떠나고 있다.

지난해 7월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 이후 교육부가 일선 학교에 소규모 수학여행을 권장한 적이 있으나 준비할 것이 많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등의 이유로 현장에서는 그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

장희숙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여는 민들레>편집장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