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4.28 19:11 수정 : 2014.04.28 19:11

세월호 참사 앞에서 국가를 생각한다

폴 해기스 감독의 영화 <엘라의 계곡>(2007)에서 우리는 애국심 투철한 퇴역헌병 행크(토미 리 존스)가 성조기를 거꾸로 매다는 장면을 본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겼다는 전설의 골짜기 엘라의 계곡. 영화에서 엘라의 계곡은 이라크로 상징되며,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행크의 둘째 아들 마이크는 무차별적인 인명살상에도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괴물이 되고 만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첨병으로 국가주의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마이크. 그런 아들을 추모하며 누더기가 된 성조기를 거꾸로 매다는 행크. 국기를 거꾸로 매다는 행위는 둘 중 하나다. 국기의 형상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해서거나, 혹은 국가적 조난사태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행크의 행위는 의식적인 것으로 후자를 강력하게 대변한다. 국가로 인해 야기된 개인의 희생!

오늘 아침, 남산을 오래도록 응시하면서 나는 조기를 달기로 했다. 생존자 구출 소식은 없고, 사망자 발견 소식만 들려온다. 어린 청춘들의 육신이 감당해야 했을 저 칠흑 같은 어둠과 죽음 너머의 적막, 그리고 끝없이 다가오는 사신의 검은 그림자를 생각한다.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억하심정이란 이런 때 쓰는 말인가?!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사고 이후의 수습 과정이다. 그것은 국가와 정부 그리고 권력기관의 총체적 부실과 실종이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에 차고 넘치는 허언들의 춤사위 속에서 숨죽이며 우는 유가족들의 망연한 얼굴들!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병자호란과 경술국치, 6·25 한국전쟁과 ‘권력자들의 고귀한 의무’를 말하다가 끝내 목이 메었다. 어른들의 탐욕과 부패와 무능과 책임회피가 야기한 비상사태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어린 학생들에게 깊숙이 머리 숙여 사죄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총총히 강의실을 빠져나오는 무력한 자화상을 본다.

이 나라 역사에서 최고 권력자와 권력집단은 고귀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의주로 야반도주한 선조, 강화도와 남한산성으로 도주한 인조. 그뿐인가! 개전 사흘 만에 대전으로 내뺀 이승만은 국군이 개성을 지나 평양으로 진격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 방송하고 6월28일 새벽 2시30분 한강인도교를 폭파하여 8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가지 않았던가?!

6·25 한국전쟁에서 미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의 외아들 제임스 공군 중위는 27살 나이로 참전했다 실종된다. 그의 시신은 아직도 찾지 못한 상태라 한다. 중국이 급파한 인민지원군 사이에 마오쩌둥(모택동) 중국 주석의 아들이 끼어 있었는데, 그 역시 한국동란 와중에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여러분은 아시는가?! 한국의 어떤 유력자들의 자제가 한국전쟁에서 전몰했는지?!

‘천안함 사태’에서 사망한 46인 영웅 가운데 계급 높은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가?! 이창기 원사와 김태석-남기훈-문규석 상사 등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 20대 초중반의 꽃다운 청춘의 말단 사병들이었다. 그들을 지휘한 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전역한 몇몇을 빼고 나면 모두 승진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7년에 걸친 임진왜란은 조선의 승리로 귀결된다. 승전의 근간은 명나라의 원병과 이순신 장군의 해상권 장악, 그리고 의병이었다. 조선 국왕이 도주한 텅 빈 한양도성을 보고 가토 기요마사(가등 청정)는 화들짝 놀란다. “이런 임금도 다 있구나?” 그를 다시 놀라게 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의병이었다.

최고 권력자와 권력집단이 포기한 나라를 구했던 것은 결국 민초들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20 대 80, 1 대 99로 표현되는 사회양극화는 송파구 세 모녀 자살사건을 낳았다. 한 해에 1만4000명 이상의 자살공화국. 천만을 훌쩍 넘는 비정규직. 이런 비정상의 일상화가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본다는 이 나라의 엄연한 현실이다.

이제 국민이 각성할 시기가 왔다. 허다한 불륜과 복수의 막장드라마로 황금시간대를 채우는 텔레비전을 끄자. 우리에게 더 많은 정보와 지식과 생활의 지혜를 제공하는 건강하고 온전한 방송을 요구하자. 국민을 청맹과니 머저리 궁민으로 간주하는 권력자와 권력집단에게 우리의 이성을 보여주자.

<엘라의 계곡>에서 폴 해기스는 잇단 전쟁으로 총체적 난국에 빠진 제국 아메리카의 심리적 외상과 그것이 불러온 재난상태 미국을 보여준다. 그들의 신랄한 사회비판과 성찰이 강대국 아메리카의 근간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우리 국민들의 연이은 안타까운 죽음이 웅변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난맥상을 보면서 오늘 아침에 조기를 걸었다. 차마 말 못할 심정으로!

김규종 경북 청도군 화양읍 토평길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