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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세월호 참사는 사회 구조의 문제 |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 구조의 문제이고, 체계의 문제이다. 이것은 모든 ‘배운 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구조’란 무엇이고, ‘체계’란 무엇인가?
8일 저녁부터 9일 새벽까지 유가족들이 영정사진을 들고 <한국방송>(KBS) 본관 앞에서 대치하다가 청와대를 향했다고 한다. 그들은 자녀들의 참사가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해명되기’를 원한다. 국가의 체면치레가 아니라, 자녀들의 죽음이 ‘이유 없는 횡사’가 아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유 없는 죽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처참한 일이다. 이것은 인류 보편의 감정이다.
어렸을 적부터 내가 주위에서 많이 들어온 말이 있다. “바보야, 시키는 대로 하냐?”, “쟨 어쩔 수 없어, 원칙주의자야.” 이런 말들이다. 우리의 기성 문화는 이런 것이다. 질서를 지키고 정직하면 그것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애송이’라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있다. 질서를 지키고 청소를 하고, 평화롭게 모여서 원하는 바를 표출하는 문화이다. 이런 문화는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었던’ 아이들의 문화로 그대로 이어졌다. 한국의 아이들은 ‘질서 있는 시민의식’을 갖추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시키는 대로 하냐, 이 바보야?”와 “착한 아이들이지?”라는 상반되는 규범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아노미 현상이다. 아이들은 대견하게도 “착한 아이들”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그래서 부모들을 졸지에 이른바 “유족충”(한국의 파시즘화 경향을 드러내는 끔찍한 비언어이다) 또는 “조문 간 케이비에스 간부들을 폭행한 무식한 사람들”로 만들어야 했다.
이제 우리가 물어야 한다. 질서를 지킨 아이들이 ‘고생을 모르고 곱게 자란 애송이’들인가? 아니면 한국의 기성 규범이 점차 폭력으로 탈바꿈되고 있는가? 보릿고개를 경험한 기성세대들은 제도적으로 측정되는 학력은 낮아도, 현실 속에서 인생을 배운 ‘현명한’ 분들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떤가? 성장의 열매를 누리고, 추위와 배고픔을 모르고, 공부만 하면 만사가 해결되는 ‘축복받은’ 아이들이어서, 그 대가로 ‘올바른 시민의식’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케이비에스 신참 기자들의 반성문에 곧이어 드러난 간부들의 자기방어가 기성 규범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홍찬숙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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