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5.12 18:43 수정 : 2014.05.12 22:38

얼마 전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미술사 학위를 따는 것보다 차라리 기술을 배우는 것이 낫다’라는 연설에 미술사 교수들과 전공자들이 크게 반발하였고, 오바마는 백악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면서 소동이 마무리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예술 계통을 전공하고, 일하고, 가르치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이는 매우 분개할 만한 기사였다. 하지만 그의 연설 전문을 들여다보니, 상황이 조금 다르다. 엄밀히 말해 그는 ‘미술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보다는 당신과 같은 생산기술자들이 아마도(potentially)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고, 그 대상은 제너럴 일렉트릭 에너지(GE Energy) 직원들이었다. 이 말의 앞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기술직에 매력을 못 느낀다고 하였고, 그 뒤에는 필요한 기술과 훈련을 받을 수 있다면 4년제 학위가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그리고 자신은 미술사를 좋아하니 오해하지 말하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말이 맞다. 역사는 원래부터 돈이 되는 직업은 아니었다. 새삼스러운 말도 아니다. 그러니 역사의 그 많은 카테고리 중에서도 ‘미술’에 국한된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돈’만으로 따진다면 오바마의 말처럼 ‘아마도’(potentially)가 아닌 ‘분명히’(definitely) 예술이나 인문학 전공자보다는 대부분의 기술직 또는 공학 전공자들이 더 많은 돈을 벌지도 모른다. 얼마 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학벌과 연봉의 상관관계, 그리고 등록금 대비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즉 등록금의 경제학이 높은 미국 대학 순위를 발표했다. 예상대로 예술과 인문학은 투자 대비 연평균 수익률이 매우 낮았다.

필자가 미국 유학 시절 기숙사의 룸메이트는 순수미술 전공자였다. 그는 할아버지를 보증인으로 세워 학자금 대출을 받으려 했지만, 서류상의 문제로 대출 신청이 반려되자 학교를 못 다닐 처지에 놓였다. 그날 룸메이트는 내 앞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물론 서류 문제는 잘 해결되어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었지만, 그날 그의 절박함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만약 오바마의,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시점에서 보자면 지금은 이름도 어렴풋한 내 룸메이트는 졸업 후 대출받은 등록금만큼 돈을 벌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소리 내어 울던 그의 열정을 누가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지금 전국의 대학은 정부의 지침에 따라 구조조정이라는 진통을 겪고 있다. 많은 예술 계통 학문들은 통폐합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에 학생들은 절망하고, 가끔 시위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필자 역시 충원율 때문에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학생을 설득해 우선 졸업을 한 뒤에 고민해 보라고 하기도 하고, 졸업 후 학업을 더 이어가겠다는 학생에게는 취업률 때문에 취업을 우선 권하기도 한다. 그러고는 자문한다. 내가 그들 삶의 올바른 조력자인가? 혹시 우리 아이들에 비해 어른들이 너무 빠른 건 아닐까? 우리의 잣대로 과연 그들의 열정을 재는 것이 옳은 것인가? 만약 예술, 인문학 전공자들의 취업률, 충원율 대신 학문에 대한 열정을 퍼센트로 환산해 순위를 매긴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질까? 물론 현실적 상황을 모두 무시할 수만은 없겠지만 조금은 느긋이 우리 아이들을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우리는 제2의 반 고흐, 카를 융을 영영 만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르니.

오정아 김포대 실내건축디자인과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