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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14 19:11 수정 : 2014.05.14 19:11

이른 아침, 여린 햇살이 세상을 깨웁니다. 작년 이날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하루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해보다 우울한 스승의 날을 맞으며, 나는 공손한 마음으로 선생님들을 기립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내 머릿속은 하얘졌습니다. 사방이 하얀 벽면인 실내에 혼자 갇혀 있는 기분이고,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기분입니다. 기억력과 판단력이 흐려지며 의식의 무중력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 교사라는 내 직업이 두렵습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수많은 교사 중 이런 기분이 어찌 나 혼자만의 것이겠습니까.

침몰해가는 배 안에서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있어라’는 방송 중에도 학생들은 분명 술렁이고 움직이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방송 지시를 잘 따를 수 있도록 지도했을 것이고, 그렇게 지도를 잘하고 잘 따른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차마 영화로도 연출하기 어려운, 악몽으로도 절대 꾸고 싶지 않은, 이런 일이 어찌 현실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시간표가 바뀐지도 모르고 교실에 앉아 있다 운동장에 늦게 나왔다고 야단치고 야단맞던 어느 날의 체육 시간처럼, 시험이 끝난 날, 적당히 놀고 빨리 집에 들어가라고 단속을 하던 어느 날의 종례시간처럼, 일상생활의 한 블록으로만 여겼던 배 안에서의 긴장감은 그만, 생과 사의 건널목이 되고 말았습니다.

기차가 지나고 나면 금방 건너가 가족들 품으로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 짧은 마음 길에서, 속절없이 묻혀버린 우리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영혼, 이 억울함을 어디 가서 호소할까요. 어떻게 보상받아야 할까요.

생의 낭떠러지에서 이것이 다 선생님 때문이라며 혹여 투정부린 녀석은 없었습니까? 팔이 다 저리도록 안아주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을 때 얼마나 이 나라를 원망하셨습니까.

알 수 없는 그 먼 나라를 동행하는 길에선 또, 얼마나 미안해했습니까? 우리가 지상에서 보내는 천마디의 말보다 선생님의 한마디가 위로가 되었을 우리 아이들. 그 두렵고 무서운 길에 선생님이라도 있어서 다행으로 여겼을 우리 아이들. 그 미지의 나라에서 선생님들은 이제 엄마 아빠도 되고, 언니 오빠도 되어 우리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겠지요.

이 나라에서 어른들이 보내는 미안하단 말이 하늘나라로 모두 빨려 들어갈 그날까지, 그래서 다시는 이 땅의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한테 미안할 일이 없게 될 그날까지. 우리를 대신해서 사죄하고 또 사죄하고 있을 선생님들을 위해 제단에 쌓인 국화 옆에 오늘은, 하얀 카네이션을 더 올리겠습니다.

이제 추스르며 털고 일어서,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훗날, ‘기억되고 잊혀지지 않아 우리 아이들이 잘 버티고 또한, 잘 보살필 수 있었노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남아 있는 자들의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꽃으로도 때리기 아까운 우리 아이들, 선생님!

부탁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박은미 광주 서진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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