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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우리 아해들을 해 있을 때 집으로 보내고 싶다! / 이문호 |
참 아프다.
말하지 않으려 할지라도 우리 학생들은 하냥 아픈 시절을 보내고 있다. 등굣길 침묵 속에서 노란 리본을 명찰처럼 패용하고 붉은 벽돌로 쌓인 그들의 배움의 공간을 찾는다. 이들을 저만치서 기도하듯 작은 미소로 맞는 선생님들이다. 그렇게 시작하는 오늘 아침 학교 풍광이다.
이런 생각들이 막 꿈틀거리기에 용서를 청한다.
그렇다. 우리 아해들에게 공부를 좀 덜 시키면 안 될까. 아니 될 말인가. 큰일 날 소린가. 온종일 교실에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공부들을 하느라 지쳐가는 인석들에게 좀 재미나는 거리들을 함께할 수 있도록 하면 안 될까.
하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말 잘 듣지 않는 미덕’을 가르치고 싶다. 배가 기울면 생명체 모두는 본능적으로 그 기우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그게 상식이어야 함이다. 그러는데도 머물며 어른들 말에 순응하며 절실히 기다려주지 않았던가. 상식과 원칙들을 가르치고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가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한 비겁하고 무기력한 우리 어른들은 스스로의 이 죄를 어떻게 씻을 셈인가. 아~, 그럴 참이다. 우리 학생들 스스로 맞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어른들의 세계를 마음껏 무어라 할 수 있도록 하거라 이를 참이다.
두나는, 우리 아해들을 해 있을 때 집으로 보내고 싶다. 그러고 싶다. 인석들 얼마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을까. 시내 길거리를 잔뜩 수다 떨며 배회하다가 언뜻 스쳐 지나는 길 어느 소박한 미술관엘 들어가 그림 속에 몰입해 들어가는 자신을 찾아볼 수 있지는 않을까. 옷 갈아입고 줄넘기 하나 들고 집 가까이에 있는 공원엘 산책하면 어떨까. 퇴근길 아빠를 마중하면 이 어찌 그 아비 된 자 흐뭇해하지 않을까.
세나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 자식 농사짓듯 그렇게 우리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 호미를 들려 도심 속 작은 텃밭으로 이끌고 싶다. 우리 학생들과 함께 배우며 가르치는 소명(召命)을 지닌 사람으로서, 오늘날 교실 속 환경은 삭막하기 그지없음에랴. 옳고 그름을 가르쳐야 함인데, 좋고 나쁨만을 취한 오늘날 세태를 타계할 지혜를 배우고 싶은 것이다. ‘땅은 참으로 정직하며, 씨 뿌린 대로 거둘 수 있다는 이것이 바로 농심(農心)’이라고 여긴다. 신록의 푸르른 그늘 속 밭이랑을 김을 매며 기어다니듯 하며 우리를 키워주신 내 어머니가 그립다.
다시금, 내 사랑하는 인석들을 온 가슴으로 더욱 크게 꾸지람하리라 다짐한다. 교사로서 만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게으름을 피운다는 것은 결코 허락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교실 속 아해들을 진실로 이해하고 격려하며 우리 부모네들이 가슴으로 키우고 염려할 이토록 귀하디귀한 인석들에게 ‘네놈들 스스로 참 괜찮은 존재’들임을 이르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북돋을 수 있는 그런 교사로 살고 싶다.
이런 것들을 다 말로 하자니 더욱 아프다.
하지만, 교사로서 작은 소망 하나가 허락될 수 있길 작금의 우리 온 세상에 청한다. 그것은 ‘우리 아해들을 해 있을 때 집으로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학생들 모두가 아픈 5월을 보내고 있다. 이들을 지켜보는 우리네 교사들은 인석들의 아픔을 쓰다듬고자 곱절을 더하는 속죄의 기도도 간직하는 오늘이다.
이문호 전남여고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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