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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사랑’은 사랑으로 받아들이자 |
매년 5월17일은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다. 국제적으로 많은 날들을 기념하고 있지만 누군가를 혐오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날은 아마 이날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아직도 많은 곳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15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보건기구(WHO)는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1990년 5월17일, 동성애 조항은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동성결혼이 인정되었고 최근 인도최고법원에서는 남성과 여성 외 제3의 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이런 뉴스는 한국에서 많은 논쟁을 일으키지만 그 내용은 의외로 단순하다. 세계는 점점 내가 사랑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2014년 5월17일,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공포와 차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범죄가 되기도 한다. 아프리카 지역의 36개국을 포함하여 전세계 76개 나라에서 동성 간의 성행위를 범죄시하고 있다. 이란과 사우디, 수단 등에서는 동성애 혐의로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법적인 부분 외에 일상에서의 공포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로 인한 증오범죄가 증가하고 성소수자 권리를 요구하는 활동가들은 괴롭힘과 폭력의 위험에 처해 있다. 그리고 정부와 종교는 이를 묵인하고 부추기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은 한국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최근 종교단체의 항의로 국립국어원이 사랑에 대한 정의를 포괄적인 개념에서 ‘남녀 간의’ 것으로 수정한 바 있다. 그들은 표준국어대사전의 사랑에 대한 정의가 “동성애를 옹호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듯하였지만 결국 이들이 주장한 것은 상대방을 차별하고 ‘혐오’하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수자들을 감싸야 하는 종교가 오히려 차별을 부추기고 있으니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혐오를 표현하거나 혐오로 다른 이를 차별하는 것은 권리가 될 수 없다. 이를 묵인하는 정부가 있다면 차별에 동조하는 것이다. 그냥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김희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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