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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21 18:37 수정 : 2014.05.21 22:03

‘세월호 사건’은 단순히 배의 침몰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거대한 사건이고 사태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애도의 과정을 지나 일상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근래에 끈질긴 생각 하나가 가슴을 두드린다. 그 두드림의 실체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삶’이다. 역사적인 사건들은 사건 이전과 이후의 삶으로 나뉜다. 이후의 삶은 어떤 식이든 이전과는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사회학자도 아니고, 이 사회의 이른바 지식인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 속수무책 바라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이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것은 이 사회의 어른이라는 것이 한없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또 아이 둘을 기르는, 엄마 된 자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절망적인 심정이었지만, 그저 그러고 말면 이런 사건은 또 생길 것이고, 다음에는 내 아이가 ‘세월호’에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한달이 넘는 시간 동안 고민이 도달한 지점은 결국 두가지였다. 하나는 이 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인식한 문제에 대해서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의 ‘실천’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로서 아이들을 매우 잘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달은 다시 ‘어떤 실천이어야 하는가’와 ‘어떻게 잘 가르치고 깨우치게 해야 하는가’에 가닿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하늘에 어지럽게 엉켜 있는 전깃줄 같다. 없으면 안 되지만 보기 싫은 것처럼 이것저것 얽혀 있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정치가 사라질 수 없고,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한 자본에 예속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꼭 필요해서 존재하지만, 전깃줄이 하늘을 어지럽게 가르는 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서서히 지배해온 것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야 겨우 깨달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얽혀 있는 문제를 하루아침에 바로잡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공감능력 부재인 일부 정치인들, 사건을 해결하고 바로잡기보다는 빠져나갈 구멍만 파고 있는 정부 관계자들, 일부 몰지각한 국민들이 ‘이후의 삶’에는 없어야 한다.

미래를 생각해 본다. 아이가 자라서 사회구성원이 될 날이 그다지 멀지 않았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와 ‘이후의 삶’을 위한 방편은 아이를 온전한 사회구성원이 되도록 사람다운 사람으로 잘 기르는 일이다. 개인적인 성공과 성취만을 위한 삶을 멈추고, 다 같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가르치는 일이다. 더 나아가 학교 교육 역시 지식의 습득만을 강조하고 경쟁을 부추기기를 멈추고, 현실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직관과 타인의 삶과 내 삶이 더불어 펼쳐질 수 있도록 공감하는 사람이 길러지는 곳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세하지만 큰 차이를 말한, 엄기호 교수의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에서의 ‘기대보다는 희망을, 힘보다는 용기를, 체험보다는 경험을, 격노보다는 분노를, 동감보다는 공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큰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저마다의 자리에서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 집단은 전문가적인 견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고, 비전문가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실천해야 한다.

지금의 현실을 우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현재에 벌어진 일 때문이 아니다. 미래가 지금과 다르지 않음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가 넘쳐나고, 직업이 생존과 직결되며, 밀림에서의 서바이벌과도 같은 사회는 직업윤리를 갖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가 절망하는 이유다. 하지만 절망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 오히려 절망은 희망을 말하기에 가장 좋은 때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 바꿀 수 없다면 지금 이후의 삶을 희망하라.’

임은주 경남 거제시 수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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