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21 18:44
수정 : 2014.05.2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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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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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봐야 한다. 하나는 사고 발생 직후 황금시간을 우왕좌왕하다 허비하여 대재앙에 이르게 한 대응과정상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사고 발생의 가능성을 키우게 했던 원인들이다. 선박의 증축과 화물의 과적, 그리고 단단히 고정시키지 않은 채 운항할 수 있게 된 경위를 짚어봐야 한다. 바꾸어 말해, ‘규제완화’가 이러한 대형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는지를 엄격하게 따져봐야 한다.
규제는 양면성이 있다. 생활에 불편을 줄 수도 있지만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보루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규제완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없겠는지를 철저히 따지면서 해야지, 소몰이하듯 몰아가면 안 된다. 특히 기업을 위한 규제완화는 더욱 그렇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정권 초의 규제완화 몰이에 있어서만큼은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꼭 닮았다. 전 정부는 “규제 전봇대를 뽑자”며 규제완화를 다그쳤고, 현 정부는 “규제는 암덩어리, 쳐부수어야 할 악, 손톱 밑의 가시”라며 대통령이 나서서 규제완화를 몰아붙이고 있다.
과연 그런가? 규제는 악인가? 지금의 규제완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선박의 연령제한에 관한 규제, 안전점검에 관한 규제, 해양사고를 일으킨 사업자에 대한 처벌규제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손톱 밑의 가시일지 몰라도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보호장치 아닌가? 지난 정부의 규제완화를 가슴 치며 후회하고 있지 않은가? 세월호 사고를 겪고서도 박근혜 정부는 규제완화를 더욱 독려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규제완화의 대가는 계속 치러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가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상징적 사례가 있다. 경복궁 바로 옆 송현동 옛 미국대사관 숙소 부지에 대한항공이 지으려 하는 이른바 학교 앞 호텔이 그것이다.
송현동 땅은 도시계획상 일반주거지역이어서 당연히 호텔을 지을 수 없다. 또한 이곳은 북촌지구단위계획구역에 포함되어 있고 지구단위계획에서도 호텔 용도를 불허하고 있다. 게다가 아주 가까이에 풍문여고와 덕성여중고가 위치하고 있어 학교보건법에서도 숙박시설을 지을 수 없게 한 땅이다. 2008년 이 땅을 매입한 뒤 대한항공은 중부교육청에 호텔을 지을 수 있게 해달라는 신청을 냈고 불가 통보를 받자 2010년 소송을 제기하였다. 행정법원과 서울고법 그리고 대법원에서조차 기각당한 뒤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출범에 맞추어 다시 호텔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집요한 노력 때문인지 박근혜 대통령의 독려 때문인지, 정부는 법을 고쳐서라도 학교 앞 호텔을 허용하겠단다. 문화체육관광부는 50미터 이내 절대정화구역에까지 관광호텔 건립을 허용하도록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지켜야 할 당사자인 교육부조차 앞장서서 학교 앞에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훈령을 개정하겠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애태우며 구조를 지켜보던 와중에 국무조정실은 규제법정 포털사이트를 열고 학교 앞 관광호텔 설치 문제를 첫번째 토론 주제로 올렸다.
학교 앞 숙박시설과 유흥시설로 인한 문제로 여러번 고역을 치른 바 있다. 2000년 여름 일산신도시의 러브호텔 반대운동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관광호텔 확충을 위해 지은 방이동 숙박시설들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 낯뜨거운 전단지들이 가득한 거리를 오고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7성급의 고급호텔이니 유흥시설이 아니라는 항변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기업을 위한 규제완화의 대가는 늘 혹독하다. 일산과 방이동이 그랬고, 세월호 또한 그렇다. 유서 깊은 북촌의 들머리, 경복궁 바로 옆에 학교보건법과 도시계획을 무시한 호텔이 들어서게 된다면, 이곳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곳곳의 학교 앞에 숙박시설과 유흥시설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설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와 대기업이 함께 손잡고 무너뜨린 규제를 어느 국민이 지키려 하겠는가? 법을 바꾸어서까지 욕심을 채우려는 기업, 그리고 본분을 망각하고 기업의 과욕을 정당화해주는 정부를 보라. 지금 침몰하는 것이 어디 세월호뿐이겠는가?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부교수
정신과 전문의 천근아 교수 "세월호 유가족, 쉽게 잊힐까 봐 두려운 고통" [한겨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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