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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02 18:12 수정 : 2014.06.02 18:12

이범 교육평론가의 칼럼을 읽고

교육평론가 이범씨의 ‘세상읽기’ 칼럼(5월15일치 39면 ‘오늘 행복한 아이가 내일 성공한다’)을 읽다가 현직 교사의 입장에서 반박하고 싶은 심정이 들어 글을 쓴다.

“우리집 아이들은 수학 이외에는 문제집을 풀지 않아서인지 가끔 우려스러운 시험점수가 집으로 날아오는데, 한번도 교사가 연락해온 적이 없다. 아침마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도 교육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으로 등교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한숨과 함께 밀려온다.”

학교를 행정기관으로 만든 데는 학부모도 한몫했다.

우려스러운 시험점수를 받은 아이의 부모님께 큰맘 먹고 연락을 했을 때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시험점수보다 훨씬 중요한 생활지도 문제로 연락드렸을 때도 전혀 협조적이지 않은 학부모들을 상대하며 교사들은 ‘학부모에게는 웬만하면 전화를 하지 않겠다’는 절화(絶話) 선언을 하게 된다. 해봤자 좋은 소리 못 듣는다는 게 이유다. 좋은 소리 듣자고 하는 건 아니지만, 잠자코 있으면 관계가 틀어질 일도 없는데 괜히 섣불리 전화 한 통 했다가 담임과 학부모 사이에 오해만 쌓여서 일년 내내 힘들어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 역시 그랬다. 진심으로 아이를 걱정하고 우려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면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안 좋게 본다’는 비난이나 ‘우리 애는 그런 애 아니에요’라는 부정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를 많이 겪었다. 아이를 잘 키워보자고 하는 단 한가지 목표를 위한 학부모와 교사의 동맹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다시 문제로 돌아가서, 귀댁의 자녀가 시험점수가 나쁘니 가정에서도 지도를 해달라고 협조를 구하는 것은 교사에게 큰 결심을 요하는 일이다. 공조가 사라진 것은 정치권뿐만이 아니다. 교육계에서도 일찌감치 공조가 사라졌다. 어쩌다 서로가 이렇게 눈치만 보게 되었을까. 학교가 더이상 행정기관 노릇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든다.

김하나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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