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12 18:30
수정 : 2014.06.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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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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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4일 태어나서 처음 내 손으로 정치인을 뽑았다. 1년 전만 해도 나를 무시하고 지나가던 후보들이 내 손을 꼭 잡고 명함을 쥐여주는 걸 보니 내가 정말 유권자가 되었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하지만 참 이상한 일이다. 이 나라의 대통령도 뽑을 수 있는 내가 우리 학교에서 학생회장조차 쉽게 가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동안 일어난 사실관계만 언급하자면 인문대 학생회장 후보가 1명 나와 찬반투표를 했지만 후보자 자격 미달로 선거는 없던 일이 되었다. 그 후보는 자퇴 선언을 하고 학교를 떠났다. 학교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니 이 사건에 대한 학우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학교에 부정적 입장이 대다수일 것이라는 내 예상은 빗나가고, 자퇴한 학생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입장도 찾아볼 수 있었다. 과 동기들도 이 문제를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더 깊은 내용을 아는 것조차 거북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여러번 고민했다. 대학에 와서 어떤 사안에도 입장을 표현하지 말고 어느 정도 교양을 쌓은 뒤에 입 밖으로 생각을 꺼내자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사회비판적인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내 의견을 주장하는 것이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입학홍보 포스터를 보면서 상상했던 학교와 입학 뒤에 마주한 학교는 거리감이 있었다. 학교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비난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저 질문이 있고, 대답을 듣고 싶을 뿐이다. 학교는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해 변화를 강행하는 것인지, 학생들은 왜 문제의 근본원인에는 관심이 없고 학교의 명예 문제에 목을 매는지. 질문에 답을 듣고 싶어도 들을 기회가 없다. 학교가 대화를 통해 문제를 개선해 나가는 방식보다, 아예 대화를 단절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학내 언론기관에서 수습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첫 취재를 맡아서 들뜬 마음으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수업 중 선배는 오늘 취재가 취소되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밖에 나가보니 곳곳에 걸려 있던 총학생회 펼침막은 제거되고 총궐기 무기한 연기 안내문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자세히 읽어보니 총학생회에서 준비했던 교육환경 개선운동 총궐기가 학교의 답변서를 받아 무기한 연기되었던 것이다. 물론 총궐기를 ‘취소’한 것이 아니라 ‘연기’한 것일 뿐이며, 학교와 학생 간의 씨름 없이 평화롭게 의사가 전달된 성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수만명의 학생을 대표하는 총학생회가 사전에 대대적인 홍보까지 했던 정중한 총궐기가 시작도 못 해본 채로 종이 한장으로 끝났다는 사실이 허탈했다. 총학생회가 무엇을 요구했는지, 학교가 그 요구를 몇 개나 수용해주기로 했는지 계산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기회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눈에 학교는 우는 아이를 달래기에 급급한 부모처럼 보였다. 적어도 아이가 무엇 때문에 우는지 제대로 들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 아닐까?
자퇴선언서는 15시간 만에 치워지고, 총학생회의 총궐기 무기한 연기 안내문은 15일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는 우리 학교는 여전히 평화롭다. 기말고사 기간은 어김없이 찾아와 중앙도서관 열람실은 자리 하나 남지 않는다. 도서관에 앉아 전공 지식을 하나둘 익혀갈수록 소통하는 법을 잊는 것 같아 두려워진다. 소통이 부재하는 것은 비단 학교 탓만은 아니다. 학교와 대화하는 순간이 온다 해도 여기 있는 그 누구 하나 나서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다. 의견을 내는 행위를 곧 소란을 피우는 것이라 이미 우리 스스로 단정 짓고 있다. 마음속에 드는 의문을 꾹꾹 누르며, 자기 일에만 집중하는 우리의 자화상은 자발적인 벙어리 같다.
이유나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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