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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18 18:47 수정 : 2014.06.18 18:47

언어학자이자 교육가인 노엄 촘스키는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에서 “학교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저항과 투쟁의 가능성도 포용하고, 민주주의의 지평을 확대하고 비판적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학생을 준비시키는 터전으로서 다양한 집단에 의해 보호되어야 할 공간이다”라고 말한다.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즐겨 쓰이고 있는 ‘안물’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안 물어봤다’라는 뜻으로 상대방의 말이 듣기 싫을 때 쓰인다고 한다. 필자의 자녀 역시 초등학생으로 ‘안물’이란 단어 때문에 어떠한 말이나 항변도 할 수 없게 만든다며 한글의 올바른 사용에 대하여 세종대왕의 업적까지 거론하며 열변을 토했다. 심지어 ‘안물’의 초성을 따서 ‘ㅇㅇㅇ’(이응이응이응)이라고 말하면 정말 싫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절대로 말을 줄여서 쓰지 않겠노라는 엉뚱한 선언을 하고 말았다. 아이에게 ‘말을 줄이는 것이 모두 나쁜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좀 편리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나쁘다’고 말하는 아이. 그래서 소통이 쉽지 않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줄여 쓴 말이 매우 효과적인 쓰임새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아이는 반론을 제기하면서도 필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또 얼마 전에는 재활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분리수거는 정말 좋은 제도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나쁜 점은 없을까?’라고 물었다. 아이는 또다시 학교에서 배운 대로 분리수거를 잘해야 환경보호가 된다는 논리를 펼쳤다. 필자는 음식물쓰레기를 분리만 한다고 옳은 것이 아니라고 힌트를 주었는데, 기특하게도 세제가 무방비로 흘러들어 간 개수대의 음식물에 문제가 있다는 답까지 나아갔다. 세제 묻은 음식물 찌꺼기 사료를 먹은 가축을 우리가 먹으면 어찌 될까를 상상하더니 필자에게 음식물을 개수대에 둔 채 설거지를 하지 말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이 두 예에서 앞서 말한 촘스키의 주장이 떠오른 것은 ‘비판적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와 훈련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아직 어린아이들에게는 교사의 말이 절대적 권위를 가진다. 교사가 다른 여지를 주지 않고 교과서에 기재된 대로 가르치고 말면 아이들은 한 면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가르치는 목적과 의도를 잃고, 주어진 대로 가르치기만 한다면 우리 교육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비판적 생각들을 길러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방과 후에 학원 가고, 숙제하고, 학습지 풀고, 문제집 푸느라 놀 시간조차 없다고 아우성치게 한 우리 사회를 한번쯤 돌아보자. 쉽지는 않겠지만, 사회가 바뀌지 않으니 따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부터 버리자. 나부터, 내 아이부터 실천하면 된다. 아이들을 학습지와 문제집에만 맡기지 말고 부모와 함께 사회의 현상들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다양한 생각을 하도록 한다면 이면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울 수 있다. 더 나아가 아이의 생각을 알게 되고 부모의 뜻을 전하면서 유대감이 생기고, 소통을 통한 공감 역시 자연스레 생길 것이다.

임은주 경남 거제시 수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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