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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말리는 시누이’ / 송원재 |
<한겨레> 신문 6월25일치 ‘아침 햇발’ 김의겸 논설위원의 칼럼 ‘전교조 변해야 산다’를 읽고 몇 번이나 망설이다 글을 쓴다.
나는 전교조 해직교사다. 정부가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를 할 때 이유로 삼은 9명의 해직교사 중 하나다. 전두환 정부 때 억울하게 징계받은 학생을 두둔하다 처음 해직이 됐고, ‘87년 민주항쟁’으로 복직했지만 전교조 출범 뒤 탈퇴각서를 내지 않아 다시 ‘거리의 교사’가 됐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2008년 처음 교육감직선제가 도입돼 ‘미친 교육’을 바꿔보자고 시민사회와 함께 진보교육감 후보를 추대하고 선관위 유권해석을 받으며 선거자금을 모금했다가 세번째로 교단에서 쫓겨났다.
서울의 거의 모든 선거구에서 이기고도 강남 3구의 몰표 때문에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지만 진보교육감 탄생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은 큰 성과였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전교조 서울지부 6명의 교사가 해직됐다. 다음 선거에서 6명의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것은 우리 해직교사 6명의 생목숨과 맞바꾼 것이라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했다.
지금 전교조가 당하는 고통이 우리로 인한 것이라 여겨져 하루하루 숨 쉬는 것도 죄스럽다. 눈 질끈 감고 우릴 버리고 합법노조로 남아도 되련만, 미련한 조합원들은 “법외노조가 되더라도 버릴 수 없다”며 함께 가시밭길을 걷겠다고 했다. “동료를 버리고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할 자신이 없었다”는 말에 왈칵 눈물이 솟았다.
우리도 ‘진보교육감 2기’를 피투성이 싸움판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칼럼이 지적했듯 4년은 짧다. ‘교육감과 전교조가 한 몸이 돼 경쟁교육과 특권교육의 한 귀퉁이를 허물어내는 데도 빠듯한 시간’이다. 진보교육감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전교조도 힘 있는 대안으로 건재해야 한다. 진보교육감과 전교조 둘 중 하나가 쓰러지면 다른 하나도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전교조가 침묵해야 진보교육감이 성공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칼럼은 “애초 해직자 9명을 끌어안고 가는 게 현명한 전략이었나 의문”이 든다고 했지만, 그것을 선택한 것은 총투표에 참여한 6만 조합원의 70%였다. 그 선택이 현명한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전교조는 그렇게 길을 선택하고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며 여기까지 왔다.
전교조는 “박근혜 정부의 ‘도발’에 순순히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기”로 버티는 게 아니라 벼랑 끝에 몰린 민주주의와 노동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해직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다. 전교조는 탄생부터 이 땅의 민주주의에 큰 빚을 졌고, 박근혜 정부가 민주주의를 뿌리째 도려내는 지금 그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땀 어린 민주화운동의 성과물이 차례로 유린당하는데도 침묵하면 이를 방조하는 것이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때로는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이다. 김 논설위원이 정녕 ‘말리는 시누이’가 되고 싶지 않다면, ‘진보교육감의 성공’과 함께 ‘전교조의 성공’에도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조합원 총투표와 대의원대회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가시밭길을 가려는데 미련하다고 윽박지르며 ‘가만히 있으라’고 다그치는 게 온당한지 의문이다.
전교조의 앞길은 누가 대신 갈 수 없다. 해직교사들은 자신의 생목숨과 맞바꾼 진보교육감의 성공을 누구보다 바란다. 전교조도 진보교육감의 성공을 위해 협력적 동반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생각이다.
송원재 전교조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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