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7.02 18:27 수정 : 2014.07.03 00:17

지난 6월5일 ‘국가정보원 수사 은폐 사건’ 항소심에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사법부를 강력히 비난했다. 같은 날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관련 문건을 무단삭제한 서울경찰청 박아무개 전 디지털분석팀장은 1심에서 증거인멸죄로 법정구속되었다. 이를 두고 ‘부하 경찰은 유죄인데 어떻게 상관인 김용판은 무죄가 될 수 있냐’며 사법부를 비난·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는 그간 일부 정치적 판결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잃은 사법부의 자업자득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김 전 청장 항소심 재판 결과와 관련하여 사법부가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비난의 화살을 받아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사실 김 전 청장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대선 기간 중 ‘국정원의 댓글공작은 없었다’는 서울경찰청의 심야 기자회견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에게 유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김 전 청장의 범죄혐의 입증이 어렵다고 본 것이다. 즉 실체적 진실이 김 전 청장의 무죄라는 것이 아니라 증거 부족으로 무죄라는 것이다.

‘김 전 청장의 수사은폐와 방해 등이 있었다’는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양심선언과 증언도 있었다. 그러나 김 전 청장은 이를 부인했다. 검찰은 이와 관련한 당사자 간의 통화 내역 등도 밝혀내지 못했다. 또한 정황상 검찰이 기소했다면 증인이 아니라 증거은폐 혐의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설 수도 있었던 서울경찰청 직원들이 증인으로 나와 김 전 청장의 은폐 지시 등을 부인하기도 했다.

물론 권 전 과장의 증언이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다고 보는 것이 상식을 가진 대다수 국민들의 법감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 증언이 검찰에 의해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못했다면, 법정에서는 권 전 과장의 증언도 당사자 간의 엇갈린 하나의 주장일 뿐이다.

<한겨레>의 보도 “검찰, 김용판 재판에 ‘여당 실세 통화증거’ 안냈다”(2014년 2월11일치 1면)와 “‘3각 통화’ 여당 실세 등 이름 빼고 전화번호만 적혀”(2014년 2월12일치 5면)를 보더라도, “검찰은 당시 ‘새누리당 핵심 실세 의원→국정원 인사→김병찬 전 서울경찰청 수사계장·김용판 전 청장’으로 이어지는 통화 흐름을 파악했으나 새누리당 핵심 실세 의원이 국정원 쪽과 통화한 사실은 공개하지 않은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 검찰이 김 전 청장의 유죄 입증을 위해서 1심과 항소심 재판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법부가 아니라 오히려 검찰이 비판받아 마땅하다.

지난 대선 기간 중 국가기관인 국정원과 경찰청의 대선 부정개입 의혹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래서다. 지금처럼 디지털분석팀장의 법정구속에 대해서 ‘상관은 무죄인데 어떻게 부하는 유죄냐’며 넋두리하듯 사법부를 비난하며 지나갈 것이 아니라, 왜 그가 증거를 무단삭제하며 증거인멸을 했는지, 누가 증거인멸을 지시한 것은 아닌지 등을 밝혀야 한다. 그러다 보면 김 전 청장의 항소심에서 밝히지 못한 실체적 진실도 드러날 수 있다고 본다. 제1야당이 나서서 사법부를 비난하는 사이 실질적 비판의 대상인 경찰청과 국정원의 책임은 온데간데없고, 사건의 본질마저도 거의 잊혀져가는 실정이다. 아직도 국민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지금은 사법부를 비난할 때가 아니라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할 때이다.

남경국 독일 쾰른대 법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