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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망각한 것인가, 원래 불가능한 것인가 / 민영기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으로 ‘한·중 밀월’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양국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비치고 있다. 중국은 세계의 생산기지로서만이 아니라 거대한 소비 시장으로까지 탈바꿈하면서 그만큼 두 나라의 경제적 밀착도도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 시 서울대 강연에서 한·중 간의 긴밀한 역사적 연결고리로 ‘임진왜란’을 언급했다.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조명연합군’을 연상시켜 일본의 우경화에 대응하는 한·중 협력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한·중 우호의 상징으로 ‘임진왜란’을 언급하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연출했지만, 나는 1592년 이후로 한 치도 변함이 없는 우리의 자아상이 문득 떠올라 가슴이 쓰려왔다. 그때와 비교할 때, 우리의 본질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중화사상에 침잠해 있던 조선의 선조는 침입해 온 일본군을 조선 땅에서 몰아내 달라고 명나라에 요청했다. 그런데 명나라는 일본군이 요동반도에까지 침입할 수도 있는 위기상황에서 조선에 방어선을 긋고 그 경계를 지키고자 최소한의 군대를 파견했다. 명나라는 딱 그만큼만 협력했다. 서애 유성룡의 간촉에도 명군은 일본군을 철군시키려 적극적으로 압박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토록 섬기던 이상 속의 대국이자 성리학의 모범인 국가는 철저히 자국만의 실리에 따라 움직였던 것이다.
반면, 우리 조정은 주체적 국가로서 자국의 실리 위주로 통일되게 행동하기보다는 사대파와 자강파로 분열되어 정쟁에 휩싸이기 일쑤였다. 중국과 일본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 단위로 움직이는 데 반해, 우리는 파벌 단위로 움직인 것이다. 통일된 힘으로 다가오는 상대국에 파벌 단위로 대응하는 나라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 나라가 세계의 수위를 다투는 제국들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한말을 넘어 분단, 어찌 보면 지금까지도 여전히 파벌 단위로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정치 패턴이다.
역사적 위기를 극복했다면 <징비록>에서 권고했듯이 역사를 거울삼아 위기에 대비했어야 했다. 하지만 당쟁과 당파싸움으로 국력이 약화되어 300여년 후에는 한반도를 통째로 일본에 넘겨주고 말았다. 지독한 일제 치하를 경험했으면 역사를 거울삼아 스스로 자강을 실천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는 일본과 ‘한반도 분할’을 포함한 막후 강화 협상을 장기간 진행했다. 지금 우리는 실제로 분단된 지 60년을 넘기고도 여전히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란 거의 없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침략하자 조선이라는 나라는 시스템이 붕괴되었다. 그 많던 관료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임금마저 중국으로 넘어가려 했다. 무정부 상황에서 무자비한 침략자들의 공격을 온몸으로 맞닥뜨려야 했던 것은 백성들이다. 오히려 백성들은 고향 땅을 수복하려는 의병들로 들불처럼 일어나 일본을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붙였다.
역사 이래 최대의 참사로 여겨질 정도의 대참사를 겪으면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실상도 그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국가’는 있지만, 정작 필요할 때 ‘국가’는 없었다. 그토록 험난한 역사적 여정을 거쳐 온 우리가 여전히 목도하는 우리의 현실이 ‘도대체 국가 시스템이라는 것이 존재나 하고 있는가?’라니. 역사의 교훈을 망각했던 것인가? ‘망각을 잘한다’는 것은 ‘원래 불가능하다’는 것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민영기 한국 청소년 사회과학 연구소(SPREAD)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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