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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09 18:23 수정 : 2014.07.09 18:23

바보 노무현. 2000년 총선에서 마지막으로 부산에 출마해 패배한 이후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정치인으로 누가 봐도 탄탄대로인 길을 두고 굳이 험한 길을 자처했던 그의 선택은 후일 그를 대권으로 인도했다. 50여년간 한국 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지역주의 망령과의 고독한 사투였다. 그의 성공담 이후, 지역주의 극복 성공신화를 모방하는 아류들이 간간이 등장하긴 했지만 다들 실패로 끝났다. 진심이 없는 모방의 한계다. 최근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사표를 내고 고향인 호남에서 보궐선거에 출마한다는 소식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일각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지역주의 타파에 일조하는 측면이 있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론 동의하기 힘들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도전해 고군분투했던 김부겸 전 의원의 사례가 더더욱 이정현 홍보수석을 초라하게 만드는 느낌이다. 적어도 현재까지 치러진 선거에서 집권 정당들이 이용했던 영호남의 지역주의는 등가의 성질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첫째, 호남 지역주의, 특히 광주에서의 그것은 지역주의 이전에 민주주의 정신의 문제와 연관이 있다. 사실 광주 민심은 5·18 민주화운동 이전과 이후로 격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기점으로 광주는 시민들 스스로 독재와 국가의 폭력에 대해 각성했고, 그것이 반독재 운동으로 이어지면서 민주주의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으로 변했다. 한마디로 독재정권에 영합하거나 기생했던 과거 전력을 지닌 후보들은 광주에서 살아남기 힘들게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새누리당이 역대 선거에서 호남에 공천했던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왜 그들이 패배할 수밖에 없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 독재정권에 영합하거나 부역했던 인물들이다. 이런 후보들로 광주시민에게 표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에 반해 영남에 출마했던 옛 민주당 출신 인사들의 이력은 대조적이다. 물론 정당들의 전략적인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노무현부터 김부겸까지 대부분 반독재 혹은 노동운동 출신이다. 새누리당은 최소한 군사정권 시절의 과거에 대해 떳떳한 후보를 내세우는 게 광주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둘째, 현대사회에서 동서를 막론하고 선거와 투표에 나타나는 보편적 양상은 계급투표 현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기본적인 흐름조차 역행하고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 정치는 후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른바 계급배반투표 현상이다. 특정 신념에 의해 계급을 배반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지역주의나 다른 외부 요소에 휘둘려 비이성적인 투표를 하고 있는 게 문제다. 이론적으론 서울 강남을 제외하고 대한민국 어딜 가도 기득권을 대변하는 정당의 당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광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호남지역 또한 상류층에 비해 노동자와 서민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부자 정당, 기득권 대변 정당의 지지율이 현격히 낮다는 점을 이유로 특정 지역을 비난할 수 있을까.

영호남 지역주의 극복은 한국 정치가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우리의 당면 과제다. 그러나 모든 갈등에는 그만한 원인과 복잡다단한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분석하기 복잡하다는, 이해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이런 모든 정황을 무시하고 양자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선택 아닌가. 백인들이 흑인을 차별하고 억압해 오랫동안 수많은 비극의 역사를 겪은 미국에서는 ‘흑백갈등’ 대신 ‘인종차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흑백갈등’이라는 용어 자체가 양자가 대등하다는 의미를 내포할 수 있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은 분명히 상호간의 갈등이라기보단 강자가 약자를 핍박했던 역사다. 마찬가지로 영호남의 해묵은 지역주의를 해결하기 위해선 양쪽을 싸잡아 비난하기 이전에 정당개혁과 동시에 정치적 예의와 관계 개선의 노력이 우선이다.

이정주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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