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09 18:23
수정 : 2014.07.0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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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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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캠프에 잘 다녀오겠다며 밝게 떠난 후배들이 다섯명이나 사라진 채 돌아온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교관의 지시로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바다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우리는 모두 망연자실했다. 슬픔에 빠진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여야 대표, 장관, 도지사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조문을 왔지만 이제 그들은 만나기조차 어려운 사람들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사고대책을 마련하고,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 말을 너무도 철석같이 믿은 것이 지금 후배들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철저한 진상규명은 해경의 어설픈 수사로 보름 만에 종결되었고, 무자격 교관을 고용하거나 수련활동을 위탁 운영한 업체 대표는 과실치사 무혐의로 처분을 면했다. 처벌을 면하자 일부는 업체명만 바꿔 사업을 재개했다. 사고 재발방지 대책은 본질에 근접하지 못해 사실상 없었으며, 관련 법안의 입법도 늦었다. 이는 학생 안전사고가 어처구니없이 계속 발생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진정 악몽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유족들은 좌절하지 않았고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 의혹을 제기하였다. 이 중 가장 핵심적인 의혹은 사망 원인과 시각이 알려진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주원인으로 조사 발표된 갯골은 사고 발생 지역에서 확인할 수 없는 지형이었으며, 1개월 전 수만톤의 불법적인 모래 채취가 이뤄졌다는 정황을 뒤늦게 포착했다. 또한 당시 훈련 과정을 찍은 필름을 확인해보니 사고 발생 시간은 더 이르며, 구조에 허비한 시간은 더 길다고 한다. 학생 안전사고 발생 시 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라도 제정해서 위와 같은 안전조치 미비와 부적절한 대응을 엄중히 심판해야 마땅하다.
태안해경은 여러 의혹을 남긴 부실한 수사를 했으나 관리·감독에는 더욱 소홀한 책임이 있다. 태안군청은 사고 업체의 불법 정황에 대한 민원인의 진정을 무시하고,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 및 계류장 설치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조처를 한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유족이 감사원에 요청한 두 기관에 대한 감사는 계속 하위 기관으로 이첩되다, 지난 5월 피감 기관인 태안군이 ‘셀프 감사’를 하고 문제가 없다는 내용을 회신하면서 끝났다.
서산지청은 청소년활동진흥법의 허점을 이용해 유스호스텔이 편법으로 수련활동 캠프를 운영했음에도 이러한 죄를 묻지 않았다. 단지 사망과 관련한 직접적인 인과관계만을 수사했다. 이 과정에서 관련 판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해 학생을 근로자, 교관을 안전대장으로 간주하였다. 시공회사 사장으로 간주한 업체 대표는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의 수사 의지가 얼마나 빈약한지, 피고인 쪽에서 선임한 대형 로펌의 영향력이 큰 것은 아닌지를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정부와 합의한 보상 문제도 난항이다. 교육부 장관을 대리한 공주대 총장은 유족에 대한 위로금 지급 문제는 별지로 작성하자고 종용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내용이 장관에게 보고되었음에도 교육부는 별지에 작성된 합의 내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위로금을 반액만 지원하겠다는 막후 협상을 벌여 유족들을 우롱했다.
1년 전 많은 언론과 취재진은 우리와 후배들을 클로즈업하는 데 바빴다. 우리가 얼마나 큰 슬픔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애써 세상에 보이려 한 것이다. 문제는 이제 남은 자들의 슬픔이다. 300일 넘게 유족들은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를 했지만, 누구 한명 나와 이들과 소통한 자 없었다. 이 끝나지 않은 비극 앞에서 멍하니 청와대만 바라봐야 하는 그 심정을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멀쩡한 사람 투사 만드는 것, 거참 한순간이다.
박인규 공주사대부고 동문(56기·올해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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