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14 19:32
수정 : 2014.07.14 19:33
이범씨의 ‘이런 전교조, 저런 전교조’를 읽고
전교조는 변해야 산다고도 하고 변하더라도 이렇게 저렇게 변해야 한다고도 한다. 모두 전교조를 향한 애정에서 나왔음을 나는 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전교조가 변화를 모색해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전교조 25년 세월 동안 우리 사회 전체부터 엄청 변했다. 학생들도 변했다. 전교조도 예외일 수 없었다. 한 가지만 말해 보자. 결성 당시 전교조가 학교 현장에서 부닥친 가장 힘든 벽은 교육 관료들의 비민주적 전횡과 촌지, 부교재 채택료 등의 금전과 관련된 부끄러운 비교육적 악습들이었다. 상당수 사립학교의 경우는 오랜 부정부패와 상상을 불허하는 비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전교조가 마주한 또다른 철벽이었다. 전교조 교사들은 나날이 그 벽들과 싸워야 하는 고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전교조는 ‘불법’에서 ‘합법’으로, 최근엔 다시 ‘법외’ 노조로의 외적 조건의 변화를 겪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기승을 부린 전교조 죽이기의 한 귀결이었다. 그렇긴 해도 전교조가 25년을 싸우고 버티는 동안 결성 당시 철옹성과도 같던 그 벽들은 시나브로 무너지거나 약해지거나 변해갔다. 전교조의 변화도 필연적이었다. 그런 벽들 때문에 전교조도, 참교육도 탄생한 것이니까. 10년의 정치적 투쟁 끝에 합법화가 된 뒤 전교조 교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한 걸음 더 학교 현장 속으로!’에 동의했다. 마땅한 변화 모색이었다. 아니 그건 변화라기보단 일찍부터 소망해온 바 교사 본래의 자리로의 회귀라고 하는 게 옳겠다. 물론 다음과 같은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은 ‘그렇다’가 되지 못한다. 합법화 뒤 15년 동안 전교조는 결성 때 그랬던 것처럼 국민과 학생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으며 명실상부한 교육개혁의 견인차요, 주체 세력으로 더욱 성장했는가? 아니다. 나부터가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있다.
그러나 이범씨의 칼럼 ‘이런 전교조, 저런 전교조’(7월10일치 31면)를 읽으며 나는 적잖게 불편해졌다. 그는 전교조 활동가를 ‘주류-비주류’로 나누면서 전교조는 남(불의한 정치권력)의 탓만 주로 해온 주류의 길이 아니라 ‘학교개혁’과 ‘수업개혁’을 실천해온 비주류의 길을 감으로써만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일견 그럴 법한 이 말에 나는 왜 불편해졌을까? 나는 나이 예순이 낼모레로서 4년째 재직 학교의 전교조 분회장을 맡고 있다. 14명의 선생님이 조합원인데 좀 열심히 ‘활동’하는 조합원은 서넛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통령 책임까지 묻는 1차 교사 선언에는 14명 모두 참여했고 법외 노조 판결 이후 투쟁이랄 것도 없는 ‘조퇴’는 아무도 안 했다. 그런가 하면 한 30대 말 조합원은 혁신학교에 대비해 진작부터 ‘새 학교’라는 교사 동아리에서 활동해왔고 한 40대 중반의 조합원은 전교조, 비전교조 할 것 없이 7명의 교사가 모인 ‘독서 모임’을 꾸려가고 있다. 또한 지난봄 서울로 ‘투쟁’하러 간 것은 분회장인 나 혼자였지만 합법 노조의 지위를 잃음으로써 필요하게 된 ‘투쟁 기금’은 상당한 정도의 돈을 모두 다 내기로 했다. 그 대다수는 법외 노조라는 고난의 길도 기꺼이 감수하기로 하는 데 흔쾌히 마음을 보탰다. 여기에 무슨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는가? 이건 전교조 집행부가 소위 ‘강성’이 되든 ‘연성’이 되든 ‘주류’가 되든 ‘비주류’가 되든 상관없는, 일선학교 전교조 조합원들의 오랜 일상적 삶의 모습이며 활동인 것이다.
내 목에 걸린 이범씨의 또다른 말은 ‘쟤들이 잘못 했어요’다. 이른바 ‘주류’에 대한 비아냥 섞인 비판인 이 말은 불의한 역대 정치권력의 전교조 죽이기에 맞선 최소한의 대응 투쟁조차 남의 탓만 하느라 정작 ‘교사의 윤리적 실천’은 소홀히 하는 태도의 소산으로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어본다. 교사로서 윤리적 책무감이 없다면 어떻게 불이익을 감수하고 선언에 참여하며 휴일을 반납하고 굳이 거리로 나설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가 보여준 이 참담한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교사의 윤리적 실천’은 진정 무엇일까? 전교조는 ‘이미 늙어버린 청춘’인 면도 있고, 진보 교육감 시대를 맞아 더욱 많은 과제를 앞두고도 있다. 변화가 필요한 까닭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교조가 누가 뭐라 해도 변치 않고 아이들과 함께 지키고자 해온 가치들이다.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삶’, ‘돈보다 사람’인 세상, 이에 반하는 권력을 향한 부단한 저항과 투쟁…. 바로 ‘교사의 윤리적 실천’이다. 전교조가 포기해서도 변해서도 안 되는 그것 말이다.
윤지형 부산시 해운대구 우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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