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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나는 영어를 잘하고 싶다! 그래서… / 김진우 |
종강하는 날 학생들에게 방학계획을 물었다. 아르바이트, 여행, 다이어트, 운동, 영어공부 등등의 대답이 돌아왔다. 알면서도 괜히 되물었다. “영어공부는 왜?” 역시 예상대로다.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 그래서 “나도 영어공분데”라고 말해줬더니, 아이들이 눈을 크게 뜬다. “교수님께선 왜요?” 진짜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30대 초반 미국 유학 시절, 공부에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사귀고, 좋아하는 영화를 알아듣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로 갑자기 영어(듣고 말하기)를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수십개의 영화 오디오를 내려받아 매일매일 반복해서 듣고 따라 했다. 10년 이상 하다 보니 어느덧 영어로 말하고 듣기가 편해졌다. 하지만 지난 4월16일은 내게, 영어로 듣고 말하는 능력보다 읽고 쓰는 능력이 중요함을 알려준 날이기도 했다. 외신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이 참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참담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인터넷을 뒤졌다. 그들의 객관적이고 냉철하며 품격 있는 재난상황 보도행태와 함께 덤으로 확인한 것은 나의 읽기 능력이었다. 속도는 느려 터졌고 한줄 건너 하나씩 모르는 단어에 발이 걸려, 단어 찾다 볼일 못 볼 지경이었다.
이후 미국, 독일, 덴마크에 살고 있는 외국 친구들에게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내용을 포함한 안부 메일을 받았다. 이들은 나의 오래된 친구들이고 한국에서 일어난 참사를 위로했으며,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얘기하고 싶어했다. 오랜 기간 메일을 주고받던 사이였지만 워낙 다양한 문제들이 총체적으로 집약된 이 참사에 대해선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무책임한 정부, 부도덕한 기업, 왜곡된 언론의 실체가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사건이며, 세월호라는 이름으로 항해하다 마침내 침몰하는 것을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봐야 했던 사건이고, 무엇보다 이 참사의 가장 큰 희생자들이 아직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 생을 마감한 10대들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복받친 감정의 크기만큼이나 문장이 대책 없이 춤을 췄다. 깜박이는 커서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결국 곁다리 얘기만 몇줄 서술한 뒤 메일을 보내곤 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소통하는 세상에서, 평범한 한국인인 내게 필요한 영어능력은 듣고 말하기보다 오히려 읽고 쓰기에 있겠다는 뒤늦은 깨달음과 함께 영어공부에 대한 자발적 동기가 생겼다.
하지만 며칠 뒤 나는 내 방학계획을 수정했다. 읽고 쓰기에 대한 공부는 맞는데, 영어가 아니라 국어로.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내게 영작문이 어려웠던 것은 영어가 아니라 내 국어 실력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유학 시절이 다시 떠오른다. 디자인대학원을 다녔던 나에게 미국에서의 수업은 자신이 밤새 고민해온 도면 등의 결과물에 대해 교수와 동료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토론하는 것이었다. 토론은 때로 격한 논쟁이 되기도 했고 별안간 심각한 사회문제로 튀기도 했다. 입 한번 제대로 뻥긋하지 못한 채 첫 학기를 마감했던 나는 속으로 “영어만 익숙해지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토론에 제대로 임하지 못했던 것이 영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 일상생활의 영어에 별 불편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느덧 티브이 드라마도 알아듣고 웃을 수 있게 되었지만, 수업시간의 나는 여전히 꿀 먹은 벙어리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주입식 교육의 억압된 분위기에 수몰되어 모국어로도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출해본 적이 없는데 혀도 안 돌아가는 남의 나라 말로 그게 가당키나 한가? 세상을 편견 없이 보고 싶어서, 나의 생각과 고민을 친구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싶어서, 나는 영어를 잘(읽고 쓰고)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우선 나는 우리글을 많이 읽고 써보는 방법을 택했다. 나의 학생들에게도 다양하고 자발적인, 영어 잘하고 싶은 이유가 생기길 소망한다. 그러다 나처럼 우리글부터 시작해도 되고.
김진우 충북 충주시 연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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