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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23 18:23 수정 : 2014.07.23 18:58

선거 때가 되니 이 나라에서 야당의 존재 가치가 과연 어디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야당이란 여당만큼이나 무겁고 중요하다고 본다. 정부 여당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될 때, 항상 그 대체세력으로서 기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오늘날의 야당들은 과연 그런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는가.

야당은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라고 했던 2년 전 총선부터 그 후 대선, 그리고 지난 6·4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여러 선거에서 이긴 예가 거의 없다. 다가오는 7·30 재보궐선거도 별로 기대를 걸 수가 없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대통령, 총리, 장관 등의 행태를 보면 그야말로 ‘무능’, ‘무책임’ 그대로였다. 그런 상황에서 치러진 6·4 지방선거였음에도 결과는 백중세였다. 그런데 그 뒤 코미디 같은 일이 추가로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총리 자리에 사표를 받아뒀던 사람을 유임시켰다.

정부 여당의 온갖 실책을 생각하면 당연히 국민들의 혹독한 심판을 받아야 하고, 그래야 민주국가로서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래야 대통령과 여당이 긴장해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려 애쓰지 않겠는가. 그런데 ‘혹독한 심판’은커녕 요즘 다시 지지도가 오르고 있다니 이해가 안 된다. 여당이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이기지 못하는 야당이라면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을까.

혹 국민에게 진실 그대로 이런 사실들이 알려지지 않아 이렇게 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어느 유족이 “이 나라의 언론이 대통령 눈치 안 보고 사건 초기부터 정부 비판만 제대로 했어도 좀더 많은 생명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필자도 우리 언론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결국 여기서 언론의 자유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언론의 권력 비판은 기본 임무 중 하나다. 선진국의 언론치고 ‘권력자 눈치’를 보느라 비판을 못하는 나라는 없다고 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장차 국민 전체의 이익이 되기 때문일 터이다. 흔한 말이지만, 비판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한국 언론자유 수준은 이명박 정부 말미 갤럽 조사에 의하면, 세계 133개국 중 87위, 공산국·아프리카국 수준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나아진 게 없다.

이명박 정부 이전, 이른바 주류 언론이라고 하는 친여 성향 신문들과 달리, 지상파 방송들은 비교적 중립적 자세를 지켜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방송사들이 정부의 압력을 받는 상태에서 선거를 치른다면, 야당 승리는 백년하청이다. 그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경기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야당에 있어 언론자유란 생존조건에 가깝다. 야당은 혹시 정부 여당이 ‘노사간 문제’라고 쳐놓은 프레임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건 아닌가. 공정방송을 둘러싼 방송사 내부 갈등은 사장과 기자, 피디들 사이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민주주의 필수조건이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 문제요, 품격 있는 국가로 가는 5000만 국민 전체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야당은 ‘모든 걸’ 걸고, 이기적 권력으로부터 언론자유를 지켜내야 한다. 모든 걸 건다는 것은 자기희생을 전제로 할 때 유의미하다. 이를테면 국회의원 120여명 전원 사표, 전원 투옥까지 각오하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모든 걸 던져야 모든 걸 얻는다.

윤용식 한국방송대 명예교수

세월호 100일, 고장난 저울 [한겨레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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