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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28 18:38 수정 : 2014.07.28 18:38

본격 여름휴가철이다. 유명 해수욕장을 비롯하여 올해도 피서지는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다. 바다도 좋고 산도 좋지만 올여름 휴가에는 붐비는 곳보다는 한적한 곳에서 진정한 바캉스(vacance, 비움)를 체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렵게 찾지 말고 시골 고향이나 지인들이 반겨주는 산간 마을도 좋겠다.

밤에 오지의 산길을 걷다 보면 머리 위의 수많은 별들과 조우하게 된다. 휘황한 도심의 야경에 묻혀 까맣게 잊고 있던 별빛과 함께 낯설지만 경이로운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빛에 흠뻑 젖어 광활한 별들의 바다를 유영하다 보면 누구 할 것 없이 외경심에 젖어든다. 잘 짜인 궤도를 운행하는 도시의 질서와는 확연히 다른, 일렁거리는 우주의 호흡에 현기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작은 지구 위에서 그동안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이 전부라고 믿었던 것들이 참으로 어리석은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연연하며 집착했던 것들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들이었던가. 캄캄해야 비로소 드러나는 우주의 실체를 바라보며 타성에 젖은 일상으로부터 깨어나 새로운 눈으로 우주를, 자연과 그리고 이 세상을 바라보리라.

여름밤에는 하늘뿐 아니라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도 새롭다. 가지 끝이 별빛과 맞닿아 있는 마을 입구의 오래된 느티나무 옆에 서면 왠지 모르게 경건해진다. 신성(神聖)은 교회나 사찰의 전유물이 아님을 깨닫는다. 어릴 적 새벽녘에 시골집 마당의 감나무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치성을 드렸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평화로웠던 추억에 잠긴다. 세계 최고의 신자 수를 자랑하는 교회와 사찰이 즐비한 나라.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안식처를 구하고 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해 절규하는 이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모두가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점점 더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과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잠시나마 평화의 참모습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달빛이 은근히 드러내는 먼 산의 어렴풋한 산릉선은 시골 여름밤 풍경 중 으뜸이다. 희미하지만 부드러운 곡선은 어머니의 품처럼 안온하게 우리를 품는다. 모든 것을 명명백백히 따지고 밝히기만 좋아하는 세태. 온갖 문명의 이기를 통해 자신을 알리려 하고 자신에게 불리하면 조목조목 변명을 마다하지 않는다.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굳이 두마디를 하여 상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야 만다.

늦은 밤 저벅저벅 논길을 걸으며 (홀로) 바라보는 건넛마을 집집마다의 다정한 불빛은 살갑기 그지없다. 누구 할 것 없이 고단한 하루를 보냈을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로를 의지하며 위로하는 모습이 떠올라 입가에는 절로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도시의 불빛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정경이다.

우울한 2014년이다. 세월호 참사부터 많은 사건·사고들 그리고 정치적 사안들이 야기하고 있는 소모적인 논쟁과 갈등들. 실체적 진실에는 눈귀를 닫고 자신들의 입장만 주장하는 정치인들도 그렇고 모든 사안을 두고 이분법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상대를 무시하는 성향들이 온 나라에 만연해 있다. 남과 북이 갈라진 것도 안타까운데 이 작은 땅에서 서로서로를 불신하고 외면하는 현실이 두렵다. 올여름에는 진정한 의미의 바캉스를 보냈으면 좋겠다. 낯선 것들과 만나며 비우고 또 비워서 나와 다른 이들을 넉넉히 품고 또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아량을 키웠으면 좋겠다.

하훈 시인·평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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