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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 류종훈 |
우연히 텔레비전을 통해 배우 안재욱씨가 미국에서 겪은 일화를 접했다. 안재욱씨는 지난해 2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져 한달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우리 돈으로 약 5억원의 치료비가 청구되었다고 밝혔다. 알아보니 같은 수술을 우리나라에서 했을 경우 대략 500만원 정도의 병원비가 나온다고 한다. 미국 수술비의 100분의 1밖에 안 되는 것이다.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제도가 매우 우수한 제도라며, 그 혜택을 받는 내가 부럽다고까지 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가 매우 우수한 제도란 걸 깨닫게 됐다.
전국민 의료보험을 시행한 지 이제 30년 남짓인 걸 고려하면 우리의 국민건강보험은 단기간에 훌륭한 제도로 발전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만 해도 오만, 가나, 에티오피아 등 많은 개발도상국가에서 벤치마킹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방문하고 있다고 하니 국제적으로도 우수성을 인정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아직 완성된 제도는 아니다. 몇 가지 보완해야 할 문제가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이 부과체계 개편이다. 현재의 건강보험 부과체계는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 등으로 나뉘어 있고, 가입자별로 보험료를 산정하는 기준도 다르다. 지역가입자는 소득, 재산 등을 세대별로 점수화해 보험료를 계산하고, 직장가입자는 해당 회사에서 받는 보수에 따라 보험료율을 곱하여 보험료를 산정한다.
이렇게 통일되지 못한 부과체계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적지 않다. 직장을 다니다 퇴직한 경우 보험료가 올라가는 게 대표적이다. 직장가입자일 때는 보수에 따라 보험료를 납부하고 사용자가 50%를 부담하는데, 퇴직해 지역가입자가 되는 경우 다른 소득과 재산도 점수화하여 보험료를 산정하게 된다. 이 때문에 어느 정도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수입원이 줄었음에도 오히려 보험료는 늘어나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를 보완하려 임의계속가입자 제도라는 것을 도입하였으나, 이마저도 2년 동안만 유지되는 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
또한 이원화된 부과체계의 맹점을 이용하려는 사람도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소득과 재산이 많은 지역가입자가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사업장의 직장가입자로 ‘위장’하는 방식이다. 보험료 부담을 줄이려는 꼼수다.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보험 방식으로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는 독일, 프랑스, 대만 등 주요 국가들은 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한다. 부과 대상 소득도 근로소득에서 모든 소득으로 확대하는 추세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제도 도입 당시 낮은 소득파악률을 보완하기 위해 부의 척도가 되는 재산, 자동차 등에 보험료를 부과하여 왔지만, 30여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소득파악률도 70% 이상으로 올라갔고, 소득 중심으로 부과체계를 개편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통일되지 못한 부과체계는 공평하지 않고, 공평하지 않은 제도는 수용성이 떨어진다. 또한 많은 예외를 두어 점점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어 국민을 불편하게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 현재 정부에서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국정운영 방향이다. 더 이상 부과체계 개편을 미뤄서는 안 된다. 하루빨리 비정상적인 현재의 부과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단일화해 우리의 건강보험제도를 더욱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류종훈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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