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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세월호 특별법’ 합의에 즈음하여! / 김규종 |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이 세간의 화제다. 고작 12척으로 적선 133척 혹은 330척을 상대하여 대승을 거둔 명량해전. 관객은 긴장감 넘치는 해전을 1시간 넘도록 손에 땀이 나도록 들여다본다. 적잖은 허구도 개입되어 있지만, 어떻게 이순신 장군이 절대적인 수적 열세를 딛고 승리를 쟁취했는지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무더위와 장대비, 찜찜하고 후텁지근한 날씨가 불쾌지수를 올리는데 어째서 이렇게 많은 인파가 영화관에 몰리는 것일까.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참여한 인원과 투표율을 <명량>의 관객수와 좌석점유율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난다. 무엇인가, 그 차이는?
지난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인들은 망연자실하다. 참사 이후에도 대형 사건들이 꼬리를 물었다. 6월21일 일어난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과 최근에 일어난 ‘윤 일병 사망 사건’은 온 국민의 분노와 절망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도대체 이 나라에 인권이라는 것이 있는지, 국민적인 재난이 발생할 경우 그것을 총괄하는 위기대응 체제와 최고책임자는 존재하는지, 결국에 ‘국가와 정부는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도, 정부·여당도, 국회도 입을 굳게 닫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앞두고 여야가 서둘러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은 그야말로 누더기에 다름 아니다. 수사권과 기소권도 없이 대통령이 임명한 특별검사의 수사에 모든 것을 맡기자는 것이다. 이래서는 사건의 진상 규명은커녕 참사와 관련된 고위 인사들에게 면죄부를 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어떻게 이런 합의가 이뤄졌는가? 부패한 여당과 무능한 야당의 야합이 그 원인이다. 유가족은 물론 국민의 시퍼런 눈길과 바람을 애써 외면하고 눈감아버리는 정치 기득권자들의 행악질이 극에 달한 형국이다. <명량>을 본 대통령은 또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신 장군의 장남 회가 아버지에게 묻는다. “왕은 아무 죄도 없는 아버님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려 들지 않았습니까?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신다 해도 왕은 다시 아버님을 가두고 죽이려 들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버님은 왕에게 충성을 다하려 하십니까?”
이순신 장군은 아들에게 나직하게 말한다. “충은 의리다. 의리는 왕이 아닌 백성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충은 왕이 아니라,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
여야 정치권과 최고권력자와 행정 책임자와 국방장관과 참모총장이 <명량>에서 보아야 할 것은 이 대목이다. 국가가 백성에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 없는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는 지극히 자명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공자는 이것을 일컬어 ‘민무신불립’이라 가르친다.
이순신 장군이 풍전등화의 국가를 구해낸 것은 ‘충’의 궁극적인 지향을 백성에 두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2014년 한국의 정치 권력자들은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정치를 하고 있는가? 당신들의 뇌리에는 국민의 자리가 있는가? 국가의 체면 손상이 두려워 누더기 합의안에 웃으며 동의했는가? 그렇다면 당신들은 어느 나라 국민인가? 당신들의 뒤를 이을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 무슨 낯으로 무엇을 남기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오호통재라, 애재라!
김규종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박래군 “세월호는 시민의 힘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 [한겨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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