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14 18:51
수정 : 2014.08.1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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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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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더 많은 임대료를 얻기 위해 지주와 공권력이 합작하여 주민들을 울타리 밖으로 내몰았던 ‘인클로저 운동’이 있었다. 주거지와 경작지를 잃은 농민들은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며 권력자들을 풍자했다. 200년이 더 흐른 지금, 삼평리에서는 ‘철탑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다.
지난 6월 밀양 송전탑 공사가 강행된 데 이어 청도에서도 7월21일, 주민들의 반대로 2년째 중단됐던 23호기 송전탑 공사가 재개되었다. 한전은 주민합의를 바탕으로 송전탑 공사를 신속히 강행하겠다고 했지만 그 합의의 진상은 소수의 찬성 주민들만 참여한 비공식 계약에 불과했다. 한전은 처음부터 송전탑부지 선정에 있어 주민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었다. 유신정권 말기에 제정된 ‘전원개발촉진법’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만으로 사업주가 송전탑 공사 부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전은 기존 송전선로를 추가로 증량할 경우, 신고리 3호기에서 생성되는 전력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기존 송전선로를 이용하지 않고 추가로 초고압 송전탑을 짓는 이유에 대해 한전은 신고리 3호기뿐만 아니라 앞으로 건설될 핵발전소의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위해서라고 했다. 그렇다면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서라도 앞으로 건설될 미래의 핵발전소를 위해서 송전탑을 세우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송전탑 공사를 수주받아 청도 삼평리 주민들과 대치중인 동부건설을 보자. 동부건설은 2013년 영업손실 1162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되었고 부채비율은 600% 가까이 육박하고 있다. 대형 공사를 수주받지 않고서는 빚더미에서 탈출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4대강 사업부터 호남고속철도 입찰까지 여러 대형 건설사들이 잇따른 불법담합으로 막대한 과징금을 물고 있다. 물론, 송전탑 공사를 입찰하는 과정에서 불법담합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정부가 대형 건설사들의 수익구조를 노골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7월13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빚더미에 앉은 건설사들에 담보인정비율과 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 이후 동부건설 주가는 폭등했다. 2009년 반대 주민들이 송전탑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하자, ‘보상을 더 받게 해주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던 그였다. 최경환 부총리는 지금도 청도지역구 국회의원을 겸직하고 있지만 청도 송전탑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낸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다음으로, 삼평리에 송전탑 공사를 하러 들어와 있는 또 다른 하청 시공사 ‘서광이엔씨’를 보자. 2003년 서광이엔씨는 지중 송전선로공사 적격업체로 등록되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도 철탑조립 신기술을 취득하는 등 송전선로 건설을 주력사업으로 두고 있다. 송전탑이 필요하지 않은 자가발전이나 열병합발전소가 확대되면 대형 공사 수주가 힘들게 된다. 하지만 당분간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지난해 정부는 그렇지 않아도 송전탑 포화 상태인 충남 당진에 300여기 345㎸ 송전탑을 2021년까지 추가로 건설하기로 발표한 것이다.
건설사가 매년 흑자를 내고 배당금 잔치를 벌이는 동안 주민들은 한평생 일구고 살아온 논밭과 집 위를 관통하는 초고압 송전선을 매일 견뎌내야만 한다. 살겠다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는데, 그나마 있던 사람들도 마을을 다 떠나버릴 것이다. 인클로저 운동 이후 2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인류가 과거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파괴되는 것은 비단 삼평리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사람을 잡아먹고만 살 것인가? 이제 공사를 멈추고, 모든 사람이 고통받지 않을 수 있는 전력수급체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성빛나 경북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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