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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20 19:31 수정 : 2014.08.20 19:31

“교황님이 우리나라의 유일한 희망이라 확신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오기 직전 세월호 참사 생존자인 단원고 학생 김유정(가명)양이 교황에게 보낸 공개편지에 쓴 말이다. 안타깝게도 살아남은 그에게,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가족에게 희망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에는 없었다. 정치도 언론도 종교도 그들의 비통한 절규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 대한 그들의 절망과 교황에 대한 그들의 희망은 정비례했다.

희망은 무게가 아니라 거리로 잰다. 바티칸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약 9000㎞. 그 먼 거리를 날아온 교황은 장기 단식 중이던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에게 직접 걸어 다가와 두 손을 잡고 그의 한 맺힌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다. 그때 김영오씨 등에는 보는 이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대통령님! 힘없는 아빠 쓰러져 죽거든 사랑하는 유민이 곁에 묻어 주세요!” 도대체 청와대는 얼마나 먼 곳에 있는 걸까?

‘무한책임’을 느낀다던 대통령은 유민이 아빠가 목숨을 걸고 단식하는 곳이 지척인데도 단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청와대로 찾아간 유가족과 시민을 경찰력을 동원해 막기까지 했다. 그런데 교황은 그 짧은 방한 기간에도 세월호 유가족을 여러번 만나 진심으로 아파해 주고 기도해 주고 위로해 주었다. 그러니 유가족이 ‘5년’ 임기의 자기 나라 대통령보다도 단지 ‘5일’ 방문했을 뿐인 외국인 교황에게 더 큰 희망을 걸 수밖에.

하지만 그 “유일한 희망”이 떠났고, 우리는 다시 익숙한 절망을 마주한다. 김영오씨는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사십일 가까이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 물 밑에서 서서히 죽어간 딸의 아빠가 땅 위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데도, 정부와 국회는 정략적 이해타산에만 골몰하고 있다. 정말 김수영의 시구처럼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희망이 떠나간 자리의 절망은 얼마나 아픈가, 반성하지 않는 절망은 얼마나 잔인한가!

절망 속에 남게 될 우리가 너무 안쓰러웠던 것일까? 교황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 수차례 희망을 힘주어 말했다. 그중 한마디가 절망의 어둠 속에 있는 우리에게 작은 촛불처럼 힘과 용기를 준다. “희망은 암처럼 자라나는 절망의 정신에 대한 해독제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준 것은 희망이 아니라 희망을 찾아가는 데 필요한 지도와 나침반이었다. 그것을 들고 절망의 해독제를 찾아 길을 떠나야 하는 이는 교황이 아닌 우리 자신이다.

루쉰은 “희망은 길과 같다”고 한다. 길이 원래 거기 있는 게 아니라 지나는 이들의 무수한 발걸음으로 다져져 나듯이 희망도 그런 부단한 노력으로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걸어야 한다. 팽목항으로, 안산으로, 국회로, 광화문으로, 청와대로, 우리의 삶 속으로… 절망이 반성할 때까지, 절망이 해독될 때까지 몇번이고 몆십번이고 걷고 또 걸어야 한다. 우리의 그 걸음이 ‘유일한 희망’이다. 신발끈을 다시 단단히 고쳐 묶자. 갈 길이 멀고 험하다.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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