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20 19:33
수정 : 2014.08.2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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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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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식구들과 간신히 날짜를 맞춰 동해안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사실 이젠 더위가 풀리는 시점이라 피서라는 말은 별로 어울리지 않았지만 광복절 연휴 때문인지 도로는 차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우리는 강원도 삼척에 있는 장호항에 짐을 풀었다. 입구에는 ‘한국의 나폴리 장호항’이란 문구가 펄럭였다. 그냥 관광객이 눈길 한번 더 주길 바라는 마음이겠거니 하고 별 관심을 두지도 않았을뿐더러 해가 진 이후여서 확인할 길도 없었다. 식구들과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가족 나들이를 나오니 모두 들떠서 다음날 무엇을 하고 놀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자막 문구가 있었다. ‘8월26일 삼척 원전에 대한 주민투표 실시’. 그랬다. 요즘 하도 이 일 저 일 힘들고 무섭고 끔찍한 일들이 많아서 잊고 있었다. 정부에서 삼척에 새로 원자력발전소를 지으려고 한다는 것을…. ‘투표가 잘되어야 할 텐데’ 걱정을 하면서도 ‘휴가를 어찌 보낼까’ 그 생각이 더 컸다.
아침을 먹고 부랴부랴 항구에 나가보았다. 작은 어시장에서 생선을 구경하고 투명 카누를 빌려 바닷속을 보면서 뱃놀이를 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바다는 참 좋지만 맑고 투명하다는 생각을 해보진 못했다. 그런데 내 눈에 비친 삼척의 바다는 참으로 투명했다. 뱃놀이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해변에서 물놀이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바로 바다로 직행하였지만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늘막을 펼치고 앉아 책을 읽고 남편은 잠을 청했다. 한참을 읽다 여기까지 왔는데 바다에 발이라도 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모래사장을 걸었다. 바닷물이 닿는 순간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물빛이 참으로 맑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겹쳤다. 물빛이 너무도 투명해서 발밑의 모래가 한 알 한 알 다 보였다.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내 발이 그렇게 오롯이 보인 적이 있었던가.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다 다시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밤 뉴스 자막 한 줄로 지나가던 삼척 원자력발전소…. 어쩌면 이 바다를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게 참으로 슬프고도 무서웠다.
정부는 그동안 원자력발전소는 석탄과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체에너지인 것처럼 선전을 해왔다. 더군다나 원전을 가동할 때 이산화탄소가 나오지 않아서 청정에너지라고 학교 현장에서 교육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소를 돌리는 데 가장 기초적인 우라늄을 캐낼 때부터 방사능이 나와서 우라늄 광산을 오염시키고 있다. 또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지역 주민들이 다른 곳에 비해 백혈병과 암에 걸리는 비율이 훨씬 높다는 자료도 이미 공개되었다. 방사능이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아 깨끗하게 생각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원자력발전은 다른 발전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든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예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원자력발전소는 아주 작은 실수로도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켜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들 것이기 때문에 감당해내기 힘들 거라고들 한다. 눈앞에 작은 이익보다 다가올 미래의 손실이 너무도 클 것임이 자명하다.
이제 공은 삼척 주민들에게 넘어가 있다. 현명한 판단을 하시리라 본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곳이다. 이 아름다운 곳에 꼭 다시 오고 싶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꼭꼭 믿어본다.
김효숙 인천시 부평구 산곡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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