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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종교인·지식인이 나서 유족의 눈물 닦아야 / 정은주 |
8년 전 한 성당에서, 3살 된 나의 딸이 세례를 받았다. 오직 한 아이만을 위한 세례식에 신부님은 눈처럼 흰 제의를 입고 아이의 키에 맞춰 계단에 걸터앉은 채 나직하게 기도문을 읊어주셨다. 세례를 해주신 신부님은 정의구현사제단을 이끈 함세웅 신부였다. 갑작스레 위중한 병의 진단을 받고 죽음을 앞둔 어린 딸 옆에서 눈물 흘리는 어미에게도, 신부님은 따뜻한 포옹을 해주셨다. 교황께서 단원고 학부모 한 사람을 위한 세례를 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그 시간이 떠올랐고, 이 땅에서 사제의 역할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종북사제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경직된 나라에서 가장 약하고 가난한 이의 눈물을 닦아준 사제는 첨예한 정치적 쟁점에 ‘중립’이라는 가면 뒤로 숨지 않고 맞서온 분들이다. 이들의 궁극의 관심은 고통의 눈물을 흘리는 한 개인에 대한 지극한 연민과 사랑이라는 걸 나는 절실히 겪었다.
100여년 전 드레퓌스 사건에서 프랑스의 수많은 지식인들은 진실을 위해 싸웠다. 드레퓌스라는 ‘일개’ 유대인 한 사람을 위해 작가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역사적인 글을 기고하고 망명까지 감수했다. 그가 꿰뚫어 본 것은 한 개인의 고통에 얽힌 거대한 구조적 비리였다. 지금 세월호 참사를 ‘일개’ 교통사고라 말하는 이들이 은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먼저 종교인들이 유족의 눈물을 닦는 데 앞장서야 하고 각계의 지식인들이 모두 나서야 한다. 우리 동네의 평범한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가수 김장훈 씨가 말했듯 이 참사에 있어 최고의 전문가는 바로 유족들이다. 일반적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는 감정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는 말들을 한다. 이는 절반만 진실이다. 슬픔이 임계점을 넘는 어느 순간 극도로 명료한 이성과 올곧은 정신이 찾아온다. 자식의 짧은 삶에 의미를 찾아줘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부채의식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단식으로 생명을 건 유족 김영오씨가 그러리라 생각된다. 그에게 단식을 중단해달라는 편지를 쓰려다 그만두었다. 김영오씨 본인이 가장 단식을 그만두고 싶은 장본인이라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온 나라가 들고일어나 그를 살릴 특별법 제정에 앞장서야 하고 그 선두에 추기경을 비롯한 사제들이 있어야 한다고 천주교 신자로서 생각한다. 죽음 앞에 선 이에게 따뜻한 손을 내미는 것은 그들의 권리이자 의무이기에.
정은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김미화 “세월호 유가족 아픔 나누는 김장훈씨 나처럼 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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