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2014년 8월 27일에 등록된 기사로 ‘2015년 명량 설날 사용설명서’ 특집으로 재편집하여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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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게임으로 만드는 한 시간의 행복 / 최삼하 |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설날 어른들께서 주신 세뱃돈을 어머니 몰래 꼬깃꼬깃 양말 속 깊게 숨겨두었다가 시내에 있던 장난감 가게로 무작정 달려갔다. 늘 그랬듯이 조립식 로봇이나 탱크, 비행기 같은 장난감을 살 요량이었다. 가게 안의 모든 장난감을 눈에 담기라도 할 듯 샅샅이 뒤지던 내 손길이 멈춰 선 것은 로봇도 탱크도 아닌 ‘부루마블’이라는 난생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섹시한 자태로 날 바라보던 그 많은 조립식 장난감을 걷어차고 전혀 장난감처럼 보이지 않던 그 녀석에게 내 세뱃돈 모두를 쏟아부었다.
그 뒤 방과후면 매일같이 친구들과 가짜 돈을 주고받으며 온 세상의 도시가 다 내 것인 양 사고팔기를 거듭했다. 손때 묻고 닳아서 구겨진 돈을 다리미로 빳빳하게 다리는 횟수가 점점 늘어가면서 내 머릿속에는 전세계 나라의 수도와 그 도시에 대한 정보들이 쌓여갔다. 훌륭한 취미였으며 유익한 여가활용이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2학년. 딸아이가 둘 있다. 게임을 가르친다는 선생이 자기 자식은 게임을 못 하게 하는 것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게임을 고민해봤다. 피시용 게임이나 스마트폰 게임은 작은 화면에 시선이 고정되고 바르지 않은 자세로 오랫동안 단순한 동작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러한 점들이 한창 자라는 아이들에게 일단 육체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이와 부모가 교감하며 행복한 에너지로 충만하게 게임을 플레이하면서도 아이들의 신체적인 성장이나 발육에 부정적인 요소가 없는 게임이 어떤 것일까?
어린 시절 ‘동키콩’과 ‘마리오’를 통해 게임세상을 내게 열어주었던 미야모토 시게루가 해답을 주었다. 게임인터페이스 분야에서 혁신적인 동작인식 컨트롤러를 탑재한 닌텐도의 ‘위’(Wii)가 출시되었고 나는 주변기기와 함께 출시된 게임타이틀을 사들였다. 동작인식 컨트롤러를 양손에 쥐고 아이들과 권투게임을 하며 손을 쭉쭉 뻗고 뛰다 보면 10분도 채 못 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아이들 성장기 정신건강에 부모와의 신체적인 접촉이나 격렬한 운동이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연구 결과들을 적잖이 보면서 이런 형태의 체감형 게임들도 그와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후 가족들이 모이거나 휴가를 가거나 할 때 꼭 챙겨가는 필수품 중 하나가 동작인식 컨트롤러를 지원하는 게임기가 되었다. 작은 가방 하나면 충분하다. 평소 해보기 어려운 운동을 하고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기도 하며 머리를 맞대고 어려운 퍼즐을 풀기도 한다. 또한 ‘할리갈리’ 같은 보드게임도 마찬가지다. 왁자지껄 한바탕 웃음으로 보드게임을 즐기다 보면 마치 명절날 온 가족이 다 모여서 윷놀이를 하던 때와 같은 기억이 떠오른다. 사회의 악으로 분류되는 게임이 대화가 부족한 가족들 사이에 교감하며 행복한 에너지를 공유하고 사랑을 확인하는 매개체가 되는 시간을 만들어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주말에 한두 시간 정도 가족을 위해 여가시간을 만들어보자. 아이들과 함께하는 게임 속 비밀공간을 만들어보자. 아이들이 커갈수록 높아만 가는 부모와 아이들 사이의 담장이 어느새 허물어져 있을 것이며 정신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맑은 아이들의 눈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최삼하 서강대 게임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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