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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미룰 수 없는 ‘의료서비스 세계화’ / 권덕철 |
작년 5월 한 여론조사기관(IPSOS)에서 고무적인 결과를 발표하였다. 세계 15개 나라를 대상으로 의료 만족도를 조사했는데, 우리가 1위를 차지했다. 뿌듯함과 동시에 우리 의료가 세계적 경쟁력이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국민건강보험은 전 국민의 99%가 가입하여 혜택을 받고 있고, 대장암 등 일부 질환의 생존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어느 나라보다도 병의원이 가까이에 있어 쉽게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보건의료 분야는 또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70년대 기계공학도가 자동차와 조선 산업을 일으켰고, 90년대엔 전자공학도가 전자와 정보기술 산업을 끌어올렸던 것처럼, 이제는 보건의료 분야가 우리나라 경쟁력을 이끌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경쟁력 있는 보건의료 분야가 국내에 안주해야만 하는 것일까. 후세대에게 새로운 일자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이제는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의료서비스, 제약, 의료기기 등 보건의료산업의 세계 시장 규모는 약 8000조원(2012년)으로, 국내총생산(GDP)의 7배가 넘는다.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도 이 시장을 가만 놔둘 리 없다. 일본은 ‘아베노믹스’ 일환으로 의료서비스 수출 기능을 대폭 강화하면서 우리를 바짝 뒤따르고 있다. 자국의 의료시스템을 개선해 국민들에게 좀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세계 시장을 개척해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보건의료 분야가 세계 중심에 설 것인지, 변방에 머물 것인지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까지 외국인 환자 63만명이 한국 의료시스템을 이용했다. 1950년대엔 우리가 외국의 선진 의료를 배웠는데, 이제는 우리의 높은 의료기술을 배우러 전세계에서 오고 있다. 특히, 중동의 의사들은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한국의 의료기술을 배우길 희망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아랍에미리트 왕립병원을 유수의 국내 병원이 5년간 1조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운영하기로 결정되었다.
일각에서는 ‘경제부처의 산업화 논리에 보건복지부가 이끌린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범정부 차원에서 논의하면서 보건의료 세계화가 강조되다 보니 생긴 오해인 것 같다. 해외환자 유치, 의료기관 해외진출 및 연구 활성화 등은 기본적으로 ‘의료서비스’와 ‘의료기관’을 기초로 하므로, 의료정책에 대한 전문성을 보유한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것이며, 상대국 협상 당사자도 보건의료 담당 부처이다.
복지부는 국민이 더 적은 비용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늘려나가고 있으며,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등 3대 비급여 비용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있다. 국민의 건강권 보호와 삶의 질 향상이 최고 가치임을 잊지 않고 있으며, 보건의료 세계화 역시 이러한 가치의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보건의료 세계화는 미국식 민간보험체계로의 전환이 아니며, 우리의 강점과 색깔을 가지고 세계 시장에서 승부하는 것이다. 이제는 ‘왜 하는지’에 대한 논쟁보다는 ‘어떻게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산적 논의가 필요하다. 정보기술 산업 이후 미래 국부 창출의 동력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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