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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03 20:40 수정 : 2014.09.03 21:38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나는 2006년 4월 철도노조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업무방해죄로 구속 기소되었다. 철도청에서 철도공사로 체제 개편 뒤 첫번째 맞이하는 단체교섭이었다. 핵심 쟁점은 근무체계 개편과 케이티엑스 승무원 비정규직 문제였고 2005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교섭은 해를 넘겨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교섭이 최종 결렬되자 우리는 예고한 대로 2006년 3월1일 오전 1시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 돌입 직전 중앙노동위원장은 철도노사 노동쟁의를 중재에 회부한다고 결정했다. 옛 노조법에 따르면 철도와 같은 필수공익사업장은 노사 간 교섭이 결렬되더라도 노동위원회가 ‘직권으로 중재에 회부’하면 15일간 쟁의행위가 금지된다. 중재 회부 이전에는 합법이었던 쟁의행위가 노동위원회가 중재에 회부하는 순간부터 ‘불법화’되는 것이다. 그러면 15일을 지나서 파업을 하면 될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중재 회부 뒤 노동위원회는 직권으로 단체협약안을 작성하고 이 안에 반대하는 쟁의행위도 불법이 된다. 이와 같이 직권중재제도는 국가기관의 행정처분만으로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 단체행동권을 제약했고 노사 자율 교섭을 통한 협약체결이라는 대원칙에도 어긋나는 악법이었다. 철도노조는 직권중재가 내려진 뒤 파업을 했으므로 노조법상 절차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불법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노조법 위반이 아니라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우리는 재판기간 내내 왜 노동쟁의 사건을 노동관련법이 아닌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가에 대해서 투쟁했다. 2011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파업이 사용자가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질 경우에 한하여 업무방해죄가 성립된다고 새로운 판결을 내렸다.

2008년 직권중재제도는 폐지되었고, 필수유지업무제도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은 이 판례조차 정면으로 뒤집고 있다. 2009년 11월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업무방해죄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 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이다. 나는 두가지 측면에서 이번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이번 판결은 증거에 따라 판결해야 하는 근대법체계를 부정하는 반이성적인 판결이다. 2009년 철도파업은 철도공사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 통보에 따라 진행되었다. 당시 철도공사는 파업을 대비하여 총리실 주재 대책회의에서 군 병력 투입을 요청한 상태였고, 파업에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다고 대국민담화도 발표하였다. 우리는 이와 관련된 모든 증거를 제출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사측의 단협해지 통보를 ‘전면파업을 유보하고 교섭을 하자’는 취지로 해석했고, 노조가 파업을 예고했지만 사측은 이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대비는 했지만 예측은 못 했다는 주장이 궤변이 아니면 무엇인가.

두번째로 이번 판결은 노조법상 필수유지업무제도를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법에 따라 노조와 사측은 파업 돌입 시에도 유지되어야 하는 업무를 사전에 합의하고 파업 참가 조합원과 비참가 조합원의 명단까지 교환한다. 실제로 사측은 운행계획을 사전에 변경하는 등 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관련법을 준수하고 파업을 해도 사용자 손실이 막대하다는 이유로 유죄를 판결했다.

이 판결이 용인된다면 이제 사용자들은 단협해지를 밥 먹듯이 하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교섭 의지를 강조할 것이다.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시민들에게 해산을 요구하고 불응 때 체포한다고 고지해도 우리는 체포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면 법원은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이명박 정권 아래서 내려진 판결조차 이 정권 아래서는 용인되지 않는 사례다.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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