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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실상사의 세월호 천일기도와 나의 실천 / 이진순 |
지난 8월 말, 실상사의 목탑지 옆에는 몇몇 동네분들을 포함한 몇분이 대나무를 자르고 기둥을 세우며 건물을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실상사의 ‘세월호 천일기도단’이 만들어졌고, 8월30일 기도의 시작을 알리는 입재식이 열렸다. 오늘로 18일째를 맞는다.
마을에 사는 나는 지난 추석에 여기에 있게 되어 4일간 기도단을 찾았다. 절의 목탁 소리, 풀벌레 소리, 새소리, 따스한 햇볕과 맑은 하늘, 살랑거리는 가을바람, 눈앞을 날아다니는 잠자리…. 참 평온한 기도의 자리였다.
이 평온한 자리에서 결코 평온하지 못한 이 사회의 현실을 생각하며 기도를 올렸다. 아직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을 포함한 304명의 이름을 읽는데, 또 눈물이 흘렀다.
참사가 일어나고 한참 동안은 크게 마음이 아프지도 눈물이 흐르지도 않았다.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그랬는지, 나의 감정과 관심이 그저 눈앞의 내 삶에 갇혀 있어서 그랬는지 잘은 모르겠다. 그렇게 한동안 지내왔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예측하지 못했던 여러 상황을 보아야 했다. 길거리에 나앉아 만나달라고 애원하는 유가족들, 목숨을 건 호소에도 꿈쩍하지 않는 대통령…. 나는 이 거대한 참사가 정쟁의 대상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당연히 진상이 밝혀져야 하고, 그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라 여겼다. 사건 초기에 간혹 튀어나왔던 ‘종북세력 척결’ 등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은 세상을 ‘좌·우’ ‘종북·종남(?)’으로밖에 바라보지 못하는 극소수의 비정상적 광기라고 여겼다. 그러나 참사 초기인 4월부터 대통령은 유가족들을 외면하는 듯한,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태도를 보였고, 경찰은 거리에 나선 유가족들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자신이 했던 말에 대해 외면과 침묵으로 돌파해 가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의 참담한 현실을 질리도록 체감하고 있다.
이미 정부와 정권에 대한 믿음을 접은 지 오래지만 ‘정말 이 정도였던가?’라는 생각에 마음속 무언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이 정도인 거구나’라며 현실을 인정한다. 인정한다는 게 그래서 받아들인다는 게 아니라 이 인정을 전제로 나의 실천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실천의 하나가 천일기도 참여다. 그리고 우리 학교(실상사작은학교) 샘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마을 분들과 함께 릴레이 단식을 내년 4월16일까지 이어가기로 마음을 모았다. 단식은 8월25일부터 시작해서 오늘 23일째 이어지고 있다. 참사 1주기까지 우리는 단식조끼를 서로의 손에서 손으로 건네면서 이 참담함을 견디고 극복해갈 것이다. 우리의 기도와 단식은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일 수 있는 그 생명들을 잊지 않기 위한,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이 사회를 제대로 성찰하기 위한 작은 노력들이다.
천일기도는 전국의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날과 시간을 정해서 다음카페 ‘지리산_세월호 천일기도’에 들어가서 신청하면 된다. 그날을 기억하며 고요한 성찰과 멈춤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분들의 참여를 기다린다. 먼 길을 오시는 분들은 절에서 주무시고 갈 수도 있다.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한 움직임들이 전국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를 기도드린다.
이진순 전북 남원시 산내면 백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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