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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판결해달라고 단식하는’ 이 기막힌 상황 / 이진환 |
눈을 가리고, 칼과 저울을 든 동상이 법원 앞에 있다. 유스티티아(라틴어: Justitia). ‘정의의 여신’은 법이 만인 앞에 정의롭고 평등하다는 것을 알리는 상징이다. 하지만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눈에 평등을 상징하는 저울추는 기울어져 있고, 정의를 의미하는 칼은 녹슬어 보인다.
2004년 노동부는 “현대차 모든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 판정했지만 현대차는 이를 무시했다. 2010년 대법원이 “현대차 불법파견”을 인정했을 때도 불법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법을 지키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탄압했다. 우리는 지난 10년의 투쟁 과정에서 현대차는 법 위에 있다고 믿었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만 4년 동안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 1심 판결을 목 놓아 기다렸다. 하지만 절망에 절망을 거듭했다. 2014년 2월 예정됐던 선고는 재판부가 이런저런 이유로 변론을 재개했고, 8월 예정했던 선고도 현대차가 선고 이틀 전에 무더기로 넣은 소송취하서로 인해 4주 연기됐다. 두번의 연기 끝에 9월18~19일 세번째 선고 기일이 잡혔다.
또다시 현대차는 세번째 선고 기일에 맞춰 기일 전에 신규채용 합격자를 발표하고, 무더기 소송취하서 접수를 준비하고 있다. 또 법원은 지난번과 같은 이유로 선고를 연기할 수 있다. 선고가 세번째 연기되면 10년을 싸운 희망이 사라질 것 같아 나와 동지 2명은 지난 11일부터 서울중앙지법 앞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단식 투쟁을 결정하고 많은 고민을 했다. 그동안 불법파견 투쟁이 시작되고 회사 용역경비들에게 맞기도 많이 맞아 병원 입원도 수차례 했다. 작년엔 척추뼈가 부러져 두달을 입원하기도 했다.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이번에도 집을 오래 비워야 한다는 생각에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걱정이 많았다. 해고로 인해 생계까지 책임지면서 아이들도 돌보는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한달 정도 서울을 가야 한다고만 했다. 처음엔 망설이던 아내가 갔다 오라고 한다. 거짓말을 할 수 없어 단식농성을 한다고 얘기했다. 설득하고 설득해서 겨우 갔다 오라는 대답을 들었다.
차라리 판결 결과가 억울해서 단식을 하는 거라면 아내와 아이들을 쉽게 설득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억울하니까. 하지만 재판부가 결정한 선고일에 판결을 해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단식을 해야 하는 이 기막힌 상황을 이해시키는 것은 너무도 어려웠다. 상식적이지 않으니까.
서울로 올라오는 날 새벽. 일찍 일어나 짐을 꾸리고 아내가 끓여준 미음을 조금 먹고, 막 집을 나서는데 두살배기 딸아이가 일어나 쳐다본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시 들어가 딸을 안고 인사를 했다. 자고 있는 아들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 나왔다. 불법파견 투쟁 시작할 때 막 돌잔치를 한 아들이 어느새 여섯살이 되었고 작년에 낳은 딸이 말을 시작해 아빠를 찾는다. 하지만 나는 당분간 아이들을 안아줄 수 없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 동안 거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을 비롯해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가족은 이렇게 상식적이지 않은 세상에서 싸우기 위해 가족과 생이별을 한다. 아빠가 있어도 아빠가 없고, 남편이 있어도 안아줄 수 없다.
단식하는 밤 달을 본다. 정의의 여신이 우리를 보고 있다면, 정의의 칼로 불법을 엄단하고 평등의 저울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물을 담아달라 기도한다. 길 위에서 기도가 이뤄지길 소망하며.
이진환 전국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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